경기도 이천시는 2년 전 드론 레이싱 경기장을 조성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경기를 유치하지 못했다. 드론을 띄우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규제가 지뢰밭처럼 깔려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드론 산업 규제를 풀겠다고 발표한 것만 수차례 봤는데 아직도 한국에서 드론 사업에 대규모로 투자하기는 어려운 환경”이라고 꼬집었다. 드론 규제는 제대로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그동안 드론의 사업범위를 국민안전·안보저해 위험이 없는 경우 전면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고 기존에 금지됐던 야간·비가시권 비행을 허용했지만 여전히 비행금지구역에서 드론을 띄우려면 목적과 성능에 상관없이 국방부나 서울지방항공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장벽은 높다. 드론으로 사업용 촬영을 할 경우 군 관계자의 입회 하에 드론을 띄워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규제도 아직 풀리지 않았다. 정부는 규제를 풀었다고 하는데 정착 현장에서는 ‘체감이 안 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이 지나 소득주도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이 일자 정부가 뒤늦게 ‘규제 혁신’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기획재정부는 4일 민간 규제건의와 애로사항을 수렴하기 위해 기업인 단체 등 관련 단체에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선 과제 제출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공문 발송 대상은 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벤처기업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 등 8개 단체다. 지난달 28일 정부가 제1차 혁신성장 전략 점검회의를 열고 이해관계자 반발 등으로 개선이 지연되는 핵심 규제를 혁신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후속 조치다.
하지만 경기침체 논란과 최저임금 논란을 거치면서 ‘내상’을 입은 기재부가 ‘난제 중의 난제’로 꼽히는 규제개혁에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에 대한 ‘패싱’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각 부처가 기재부의 지시에 따를 것인지부터 의문이라는 것이다.
정부 스스로도 1년간의 추진 상황 점검을 통한 규제개혁에 대해 “많은 공을 들였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총론으로는 찬성, 각론에는 반대’ 식의 기득권 반대에 막혀 있다”고 진단할 정도다. 정부부처의 한 관계자는 “규제에는 다 이유가 있고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며 “청와대에서 전폭적인 힘을 실어줘도 모자를 판에 패싱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는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재부가 규제혁신의 컨트롤타워를 맡는 게 적절하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나 총리실 국무조정실과 업무가 겹치기 때문이다. 규제개혁 같은 범부처 과제는 대통령이나 총리실에서 맡는 게 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세종시의 한 공무원은 “혁신성장의 컨트롤타워 역할은 기재부가 맞지만 규제개혁을 추진하는 주체는 국무조정실”이라며 “기재부가 규제개혁 과제를 두고 국무조정실과 알력 다툼을 벌이려고 하는 것일 수는 있지만 기재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크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어떤 규제를 풀어야 할지 정답은 나와 있는데 또다시 규제개선 과제를 모으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드론, 핀테크 등 업계가 요구해온 개혁안은 수년간 정부 책상 안에 잠자고 있다. 승차공유 스타트업의 카풀 영업을 ‘유사운송행위’ 등 위법 행위로 보는 지자체·택시업계와 ‘낡은 정부 규제’로 보는 스타트업 업계의 이견을 좁히기 위해 정부가 중재에 나섰지만 택시업계의 반발로 매번 실패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미 수렴한 규제개선 과제 중 핵심적인 과제들을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며 “의견수렴이 요식행위가 되지 않도록 규제개선과 더불어 기업들에 대한 유인책도 함께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강광우·빈난새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