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의 돈을 ‘먹튀’하는 등 개인간거래(P2P) 업체의 사기행각이 연일 도마 위에 오르면서 P2P 제도화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둘러 제도적 기반을 갖추지 않으면 감독의 사각지대를 틈타 투자자를 속이는 업체들이 또다시 생길 수 있어서다. 투자자 보호가 미흡한데다 1조원에 달하는 대출 잔액이 미상환된 상황이어서 투자자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오리펀드와 더하이원펀딩이 200억여원 규모의 사기 대출을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오리펀드가 대출 상품을 내놓을 때 담보로 내놓은 부동산 등기부등본과 원본을 대조한 결과 위조된 사실이 투자자 커뮤니티에서 밝혀지면서 업체 대표 두 명이 돌연 잠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애초에 대출 상품을 1개월 만에 상환할 수 있다고 내세운 것 자체가 사기 의혹이 짙다고 보고 있다. 투자한 뒤 단기간에 돌려받을 수 있는 상품을 선호하는 투자자들의 성향을 이용해 돈을 끌어모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최근 사기 혐의로 민·형사 소송이 제기된 P2P 업체 펀듀의 경우도 6개월 단위의 담보대출 상품을 여러 개 모집한 뒤 투자설명서에 기재된 차주를 바꿔치기했다.
무리하게 대출 상품을 출시한 뒤 부도를 낸 업체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최근 헤라펀딩이 135억원 상당의 대출 잔액을 남겨놓고 부도 처리됐으며 두시펀딩과 빌리도 장기 연체 끝에 부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투자자들이 이에 대한 공동 대응을 모색 중이다.
문제는 현재 금융당국에 P2P 업체에 대한 직접적인 감독 권한이 없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 뒤에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수사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대부업법을 근거로 P2P 업체의 자회사인 등록연계대부업자를 통해 P2P 업체의 자금흐름을 들여다볼 수는 있다. 하지만 모회사인 P2P 업체에 대해서는 감독의 법적 근거가 없어 P2P 상품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직접 살펴볼 수 없다. 이렇다 보니 피해자들은 경찰이나 검찰 등에 기대고 있지만 이마저도 사건 처리가 지지부진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피해자들이 사기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해도 관할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려되는 경우가 상당해서다.
이 때문에 서둘러 P2P 업체를 제도화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P2P 대출업을 ‘온라인대출중개업’으로 정의하는 내용 등으로 관련 법안이 다수 발의돼 있지만 통과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온라인대출중개업에 관한 법률안’은 계류된 지 거의 1년이 되고 있다.
한국P2P금융협회에 따르면 60여개 회원사의 누적 대출액 2조3,000억여원 가운데 대출 잔액 1조여원이 미상환된 상황이다. 업체들이 투자금을 부실 운영하고 있다는 실태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 투자자는 “업체가 투자자 보호에 미흡하다면 정부나 국회에서 나서줘야 하는데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면서 “더 큰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법제화를 통해 시장을 안정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2P 업계도 이 같은 입장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P2P 업체의 한 관계자는 “이대로 가다가는 투자자를 속이는 업체가 또 나타나 업계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면서 “서둘러 투자자 보호를 강화해야만 건전하게 P2P 시장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혁·손구민기자 coldmet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