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뒷북경제] 일자리 직결 SOC 줄이고 소득주도성장 '한길'…458조 ‘슈퍼예산’ 요구한 정부

올해보다 6.8% 늘어 7년래 최대폭

복지·고용예산 150조 돌파 확실시

내수·일자리 직결된 SOC는 또 -10%

경기 완충·성장동력 확충은 뒷전

"구조조정·경기침체 대비 재정여력 쌓아야"

문재인 정부 각 부처가 내년도 예산으로 올해보다 6.8% 늘어난 458조1,000억원을 요구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예산 증가율 7%’를 공약한데다 정부·국회 논의과정에서 최종 편성규모가 커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년은 최소 460조원대의 ‘슈퍼예산’이 책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를 뚫고 정부가 늘린 지출은 복지 확대와 저소득층 지원 등 소득주도성장에 집중됐습니다. 국방비 증액과 남북교류 확대도 주된 증가 요인입니다. 반대로 미래 성장동력을 확충하거나 내수·일자리에 즉각 효과를 줄 수 있는 분야는 예산이 대폭 깎이거나 제자리걸음을 하게 됐습니다. 대표적으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올해도 10.8%나 깎일 위기에 처했고 산업 관련 예산 요구액은 1%도 채 안 늘었습니다. 미세먼지·재활용쓰레기 등 국민 관심도가 높은 환경 예산도 깎일 전망입니다. 이대로면 경기 보완이나 성장동력 마련은 뒷전이 되고 나랏빚만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지난 14일 기획재정부는 이런 내용의 ‘2019년도 예산 요구 현황’을 발표했습니다. 기재부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짜기에 앞서 지난 3월부터 각 부처로부터 예산 요구 내역을 제출받았습니다. 전체 12개 분야 중 8개 분야가 올해 대비 증액을, 4개 분야는 감액을 요청했습니다. 기재부는 이를 총조율해 오는 9월2일까지 정부의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최종적인 2019년도 예산은 이를 바탕으로 정부와 국회 논의를 거쳐 올해 말 국회에서 확정됩니다.

올해 정부 각 부처가 요구한 총지출 증가율 6.8%은 지난 2012년도 예산 요구안(7.6%) 이후 7년 만에 최대치입니다. 문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정부 예산 증가율을 7%로 2배 높이겠다”고 공약한 대로 7%에 육박하는 수치이기도 합니다.

실제 내년도 예산안은 각 부처 요구안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해에도 정부는 6.0% 증액을 요청했지만 최종 편성된 예산은 전년 대비 7.1% 늘었습니다. 더욱이 최근 문 대통령이 소득주도성장 보완과 저출산·고령화 극복, 남북경제협력 대비 등을 위해 재정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라고 지시한 만큼 최종 예산 증가율은 10%선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여당의 6·13 지방선거 압승으로 정부의 재정확장 기조도 탄력을 받은 상황입니다.

2019년도 주요 분야별 예산 요구 현황2019년도 주요 분야별 예산 요구 현황


내년 예산 요구안의 핵심은 여전히 소득주도성장입니다. 전체 예산의 3분의1을 차지하는 보건·복지·고용 예산은 153조7,000억원으로 올해보다 6.3% 증액을 요구했습니다.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기초연금과 양육부담을 덜어주는 아동수당, 건강보험 급여항목을 늘리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 실행을 위한 건강보험가입자지원 확대 등 정부의 국정과제 다수를 책임지려면 재정지원 확대가 불가피합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고용 예산은 내년 사상 처음 150조원 돌파가 확실시됩니다.

규모가 세 번째로 큰 교육 예산(71억3,000억원)도 11.2% 증액을 요청해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국가장학금 지원 확대 요구가 늘어난데다 세수 호조에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덩달아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지방자치단체의 교육 및 교육기관 운영 관련 재원을 마련해주도록 규정한 법에 따라 정부는 내국세 총액의 20%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내려보내야 합니다. 이 예산은 앞으로도 쭉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무상급식 확대, 고교 무상교육 실시 등 교육의 공적 책임 확대를 국정과제로 제시한 문재인 정부가 지자체 재원 마련을 위해 내국세 교부율을 높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남북 화해 분위기와 발맞춰 남북교류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포함하는 외교·통일분야 예산이 6.2% 증액 요구된 점도 눈에 띕니다. 국방(8.4%) 분야는 군 인력 증원과 방위력 개선 확대 요구, 일반·지방행정(10.9%) 분야는 세입여건 호조에 따른 지방교부세 증가가 증액 요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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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상대적으로 경제 성장동력을 키우거나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분야 예산은 증가율이 평균(6.8%)을 크게 밑돌았습니다. 우선 산업 분야는 ‘탈원전’ 기조에 따른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창업지원에 0.8%만 늘렸습니다. 연구개발(R&D) 예산 증가율도 2.3%에 그쳤습니다. 정부는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예산 비중이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인 만큼 절대 액수가 부족하진 않다고 보고 관료주의적인 평가 제도 개선, 연구 효율성 제고에 더 힘을 쏟겠다는 방침입니다. 연구 현장에선 이를 반기면서도 민간 투자 환경이 미숙한 상황에서 정부 투자 축소의 타격이 상당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특히 건설경기와 일자리, 도로·철도 등 사회 인프라와 직결되는 SOC 분야는 올해도 예산요구액이 10.8%나 줄었습니다. 올해 예산(19조원)이 지난해 대비 14%(3조1,000억원) 급감한 데 이어 내년도 예산도 16조원대로 대폭 깎일 가능성이 커진 겁니다.

SOC 예산이 2년 연속 10%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고용 부진과 건설 경기 위축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습니다. 올 2~4월 내내 10만명대에 그쳤던 신규 취업자수가 지난달에는 8년여 만 최저치인 7만명대까지 떨어진 상태입니다. 경기 부진과 최저임금 인상 여파에 더해 건설투자가 줄면서 건설업에서 수요가 많은 임시·일용직 일자리가 크게 준 영향입니다.

건설투자 둔화 속도는 예상보다 더 빠릅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건설투자 증가율을 상반기 1.3%, 하반기 0%로 예측했습니다. 지난 3월 예측치보다 각각 0.2%포인트, 0.4%포인트 낮춘 것입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해 7.6% 증가했던 건설투자가 올해 -0.2%, 내년에는 -2.6%로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현대연은 “최근 건설 수주 등 건설경기 선행지표의 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건설투자는 하반기 입주물량 증가 및 보유세 개편안 발표 등 부동산시장 규제 강화로 건물건설 부문을 중심으로 빠르게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SOC 투자의 시기 조절을 통해 건설부문 투자 위축으로 인한 경제성장률과 건설 부문 취업자 수의 변동성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밖에 미세먼지와 재활용쓰레기 ‘대란’으로 국민 관심도가 높아진 환경 분야도 요구예산이 3.9% 줄었습니다. 쓰레기매립장, 소각장, 하수도처리시설 등 환경기초시설 인프라 감축이 원인입니다.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외국인 투자기업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외국인 투자기업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예산요구안이 성장보다는 분배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침체 논란까지 나오는 경기 보완과 성장동력 확충은 뒷전이 되고 재정 건전성만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지금은 세수가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정부지출이 크게, 그것도 꾸준히 늘어나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KDI는 올해 상반기 경제전망을 통해 대내외 불확실성과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 여력을 비축해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현욱 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앞으로 산업 구조조정과 국내 제조업 경기 둔화 가능성에 따라 재정이 더 필요할 수 있다”며 “초과세수는 국채 상환에 활용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내수 연관 효과가 큰 SOC는 줄이고 주력산업 침체를 보완할 대책도 안 보인다”며 “경기를 살릴 정책수단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빈난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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