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취임 다음 날인 지난해 5월11일,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이정도 기획재정부 행정안전예산심의관이 임명되자 세종시 관가는 ‘변양균’이라는 이름 석 자로 들썩였다. 7급으로 공직을 시작하고 대선 캠프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이 비서관이 임명된 배경에는 ‘노무현의 남자’로 참여정부 때 정책실장이자 18·19대 대선에서 문 대통령을 도운 변양균 전 실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변 전 실장의 사람으로 분류되는 홍남기 국무조정실장(11일 임명),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21일), 반장식 일자리수석(7월3일)이 잇따라 지명되자 변 전 실장은 대중에 모습 한 번 드러내지 않고도 막후 실세로 급부상했다. 과거 ‘신정아 스캔들’과 ‘제2의 참여정부’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어 전면에 나설 수는 없지만 뒤에서 위세를 드러낼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당시 기재부 과장급 이상 직원이라면 너나없이 변 전 실장이 출간한 ‘경제철학의 전환’이라는 책을 하나씩 사 들고 빼곡히 메모해가며 달라질 경제정책 기조를 가늠하려 애쓰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대통령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것일까. 이후의 흐름은 사뭇 달랐다. 금융권 인사에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대거 포진돼 변 전 실장의 위세는 주춤했다. 대표적으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최종구 금융위원장, 채용청탁 문제로 물러난 최흥식 전 금융감독원장 등이다. 시장에서는 경제·금융계 실세는 장 실장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했으며 변 전 실장의 이름은 잊혀 갔다. 변 전 실장은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듯 지난해 11월 국제통화기금(IMF) 워킹페이퍼에서 종신고용 관행 탈피, 수도권 규제 완화에 따른 개발이익 공유 등 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비판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장 실장과 김 경제부총리는 ‘경제 투톱’임에도 같은 자리에 함께하기를 서로 꺼릴 정도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왔는데 이게 결국 장 실장과 변 전 실장 간 갈등의 대리전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그랬던 변 전 실장이지만 최근 포스코 차기 회장 선임 문제를 두고 오랜만에 등장하며 다시 어깨를 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포스코 대외협력팀장 출신인 정민우 국민재산되찾기운동본부 집행위원은 20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변 전 실장이 포스코 안팎과 결탁해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시절 넘버 3를 복귀시키고 이를 통해 상왕으로 등극하려 한다는 말이 돌고 있다”며 “심지어 모 사외이사를 뒤에서 조정한다는 말도 나온다. 변 전 실장이 제대로 말을 해줘야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변 전 실장을 지목했다. 정치권에서는 바른미래당이 4일 “장 실장이 특정 인사를 포스코 회장으로 임명할 수 있게 협조를 요청했다는 제보가 있었다”고 의혹을 제기한 후 장 실장이 힘을 못 쓰자 변 전 실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우리은행지주 차기 회장으로 변 전 실장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특히 절묘하게도 지금은 장 실장의 입지가 크게 좁아지는 시점이다. 본인이 강력 부인하기는 했지만 사퇴설이 불거졌고 최근 고용, 소득분배지표가 최악을 기록하면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은 상황이다.
이 같은 다툼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곱지 않다. 참여정부 때도 관료 출신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 간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 등 지루한 공개 설전으로 엇박자 논란이 많았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미중 무역갈등 등 대내외 경제여건이 크게 안 좋아지는 상황”이라며 “노선갈등을 할 여유가 없으며 하루빨리 갈등을 중재해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