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은 현 정부의 지지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 많다”며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느냐에 앞으로 1년간의 경제 성적표가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의 성패는 경제가 좌우하는데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절박함이 담긴 얘기였다.
하지만 정부의 규제 완화를 두고 참여연대는 “과거 정부로의 회귀”라고 날을 세웠고 “1년 만의 우클릭”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만남에 대해서도 ‘면죄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요2개국(G2) 무역전쟁과 내수위축으로 경제는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데 내부에서 기업정책을 놓고 진보와 보수, 진보와 진보 간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어떻게 볼까. 김광수경제연구소는 11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시작으로 김상조 위원장마저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이룰 수 없고 혁신성장이 필요하다며 진보진영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라며 “자기착각의 시대착오적인 이념과 현실을 무시한 신념이 어리석음과 무지로 포장될 때 나라를 망가뜨린다”고 진보세력을 비판했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경제여건은 녹록지 않다. 싱가포르 DBS은행은 G2 무역전쟁으로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연 2.9%에서 2.5%로 주저앉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고용 증가폭은 지난 2월부터 5개월 연속 10만명을 오르내리며 ‘일자리 쇼크’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경제 최후의 보루인 수출도 지난달 0.09% 감소했다. 내수도 5월 소매판매액은 전월보다 1.0% 줄었고 설비투자는 3.2%나 쪼그라들었다. 우리나라가 경기침체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이런데도 국내에서는 기업정책을 놓고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참여연대는 인터넷전문은행 규제 완화 반대를 비롯해 종합부동산세 과세 강화, 금융소득세 종합과세 기준을 내리지 않은 기재부에 대한 인하 요구 등을 쏟아내고 있다. 진보진영 내에서는 종부세 별도 합산 토지에 대한 세율 인상을 하지 않은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정부는 “세율 인상 시 임대료 증가와 생산원가 상승이 우려된다”는 입장이지만 진보 측은 “대기업 봐주기”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규제 완화는 ‘악’, 강화 내지 유지는 ‘선’으로 보는 셈이다.
진보세력 내에서도 의견충돌이 나온다. 참여연대 출신인 김상조 위원장이 진보진영을 공격하고, 진보 측이 이를 되받아치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지난달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상조 위원장이 “진영 간 토론보다 진영 내 토론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진영논리에 휘말려 금융혁신지원특별법 개정안 같은 ‘규제혁신 5법’이 계속 표류할 수밖에 없다는 게 관가의 우려다. 규제프리존특별법과 서비스업발전법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참여정부만 해도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 허가를 위해 규제를 일괄 완화해줬지만 지금은 대기업 혜택으로 비칠 수 있는 사안은 ‘촛불민심’을 내세우며 덮어놓고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게 현실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밖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규제 완화에 유연하고 합리적으로 접근한다”면서도 “여당이 지지층을 과도하게 의식할 경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좌파 진영에 속하는 그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베텔 총리는 경제정책 수립과 집행에 있어 균형감각을 중시한다. 그는 “심장은 왼쪽에 두지만 오른쪽에는 지갑을 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에서는 기업의 기 살리기와 규제 완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내수확대가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기업투자 확대→일자리 증가→경제활성화’라는 선순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중 규제 완화는 무조건 안 된다고 할 게 아니라 현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판단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원소연 한국행정연구원 규제비용연구실장은 “현재 규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어떤 식으로 개선하는 게 좋은지 차근차근 논의해나가는 게 필요하다”며 “지금은 규제 관련 비용편익분석도 부족한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