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저임금 차등적용-반대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저임금 제도 취지에 정면 위배

내년 최저임금 10.9% 인상이 결정된 후 최저임금을 업종·규모 등으로 구분해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고용노동부에 최저임금 재심의를 공식 요청한 데 이어 소상공인연합회도 ‘5인 미만 사업장 최저임금 차등화 방안’ 재심의를 요구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이달 말 ‘최저임금 불복’ 집회를 예고하고 있어 차등 적용이 재쟁점화하는 양상이다. 정치권에서는 홍일표 자유한국당 의원이 최저임금을 사업장별로 차등 적용하자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차등 적용 찬성 측은 당장 오르는 인건비를 감당하기 힘든 자영업자·소상공인의 타격이 가장 큰 만큼 차등화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반대 측은 차등 적용이 최저임금제도의 취지를 훼손하고 규모별로 차등 적용할 경우 사용자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오히려 고용원을 덜 채용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자영업은 한국 경제와 노동시장을 지탱해온 큰 축이다. 지난 1983년까지만 해도 전체 노동시장 참여자의 절반을 웃돌았고 지금 비록 그 수가 줄었다 하나 전체 취업자의 4분의1에 달한다. 현재 고용원을 두고 있지 않은 자영업자는 500만명, 고용원을 두고 있는 자영업자는 약 150만명 정도 된다. 1년 내내 고용원을 두고 쓰지는 않지만 간헐적으로 아르바이트 인력을 쓰는 자영업자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300만~400만명에 이른다.

최저임금이 2년에 걸쳐 29.1% 인상됐다. 자영업자들은 고단함을 넘어 좌절하고 있다. 소상공인들은 불복종운동을 벌이겠다고 한다. 사실 소상공인들이 불복종운동을 벌이지 않더라도 주휴수당을 주지 못하는 곳, 주휴수당을 안 주기로 사정하거나 합의하고 일하는 곳이 많았다. 그간 최저임금 영향률이 6~18%까지 차이를 보였던 배경이다.

최저임금을 줄 수 없는 생계형 자영업은 접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적응하기가 힘에 부칠 정도로 인상된 지금, 경제원리로 보나 정책 수용성을 높이며 정책을 펴야 할 정책결정자의 도리로 보나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저임금제도를 운영해온 기존 원칙과 철학을 현격하게 변화시키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조정됐고 지역·업종·규모별로 차등 적용하거나 청년·고령자를 차등해 적용하자는 제안들이 나오고 있다.


생산성이 다른 기업들이 줄 수 있는 지불능력이 다를 수 있으니 자유로운 시장과 계약을 존중하는 나라에서 차등 적용은 무조건 안 된다고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받아야 할 임금의 적정 수준에만 주목하는 것이 자유로운 시장원리를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의 지불능력에만 주목하는 것은 ‘국가 차원의 최소한(national minimum)’을 정한 최저임금제도의 취지를 가볍게 여길 수 있다. 차등 적용은 급격한 인상에 대응하는 미봉적 조처로 할 일이 아니다.

관련기사



규모·업종별로 차등화하자는 것은 상승 폭이 너무 높으니 힘들어서 나온 얘기라고 이해는 간다. 하지만 4인 사업장과 5인 사업장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1명을 덜 채용할 유인을 주는 것은 일자리 증진 취지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제도운영 방식이 아닌가. 교묘히 피해가려는 소상공인이 갖는 유혹은 어떻게 불식할 수 있는가. 어제는 도매상 같은 5인 사업장에서 일했는데 오늘은 음식점 같은 4인 사업장에서 일하게 된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제도의 근로자 생활안정의 취지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업종별 차등은 급격한 인상의 적응 과정에서 발휘했어야 할 수단이지 최저임금제도 안에 반영할 일은 아니다.

0315A37어떻게반대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가져온 여러 영향이 있겠지만 제도개선 요구를 촉발시켜 일자리를 늘리고 더 많은 노동시장 참여자에게 노동 존중을 실현하는 제도개선으로 이어진다면 더 큰 기여가 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달라진 최저임금제도의 투명성과 형평성을 더 높이고 국제기준에도 부합하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암묵적으로 최저임금법 준수 실패가 상당 부분 있었고 제도운영의 투명성이 부족했으며 유급휴가와 퇴직급여에서 주당 15시간 미만 일하는 노동자(초단시간노동자)를 법이 차별하고 있는 현행 제도를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현재 초단시간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상 휴일·연차유급휴가를 적용받지 못하고 임금에서 유급주휴분을 받지 못한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상 퇴직급여제도가 적용되지 않아 근속기간이 1년을 넘더라도 퇴직급여도 받을 수 없다.

임금 외 노동비용이 무시하지 못할 수준인 현실에서 이러한 법 제도상의 허점이 새로운 풍선효과를 낳고 있다. 노동비용을 줄이기 위해 초단시간 근로에 호소하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 주당 12시간 이상 강의를 안 주려는 학교들이 일반화되어가고 있고 14시간50분 계약을 하는 상점도 늘고 있다. 이런 초단시간 근로자는 2002년 18만6,000명에서 2016년 63만4,000명으로 3.4배 늘었다.

주휴를 무급으로 한다면 내년까지 1만원 최저임금을 만들어내겠다는 공약을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구조적 차별도 없애주고 제도 투명성을 높여 최저임금 준수율도 크게 높일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