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0조원 이상으로 늘어나는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을 놓고 일부 교수들과 정부출연기관 연구원,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해외 허위 학술단체인 ‘와셋’에 교수들과 정부출연기관 연구원들이 대거 참여해온 것이 단적인 예다. 심지어 국내 최고의 서울대 공대 교수들조차 와셋에 논문을 발표해 빈축을 사는 등 유명 연구진도 예외가 아니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끊이지 않는 일부 연구자의 연구비 횡령, 유령 국제학회 참가, 사이비 국제학술지 논문 게재, 미성년 자녀의 부당한 공저자 포함 등 만연한 도덕적 해이를 해소하기 위한 자정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17일 서울 테헤란로의 과학기술회관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가 R&D 시장이 커지고 있는데 (일부 연구자들의) 사기 수법도 고도화·지능화하는 등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고 개탄하며 학회의 자정 노력을 촉구했다.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을 비롯해 한국과학기술한림원·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함께 한 이날 간담회에서 김 회장은 “연구윤리가 무너져 과학기술계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면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라며 “과총에 속한 400여개 학회(전체 학회는 800여개)를 중심으로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게 자구 노력을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과총이 지난 2007년 ‘과학기술인 윤리강령’을 제정했으나 선언적 의미가 커 앞으로 토론회 등을 통해 부실 학회에 대한 페널티 부과 등 실효성 있는 연구윤리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나아가 국가 R&D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며 영수증 처리 등 행정 절차의 간소화도 촉구했다. 연구과제에 따라 연간 계약을 다년계약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1년 안에 다 써야 하는 연구과제가 많은데 부정한 학술활동을 막고 연구 연속성 차원에서 다년계약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자리에서 권오경 회장은 “대학 산학협력단 직원이 교수들의 업무를 몰라 영수증 처리에 문제가 있어 연구실에서 하고 있는데 일정 교수를 묶어 행정요원을 붙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김승조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은 “해외에 국제논문 키노트를 주면 5분 안에 논문을 만들어주는 곳도 있다”며 “캘리포니아공대는 웹사이트에 약탈적인 유령학회의 콘퍼런스와 저널을 띄워놓고 있다”고 소개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