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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근로단축 가이드라인] 이미 스태프 신고 빗발치는데..판례만 나열한 지침에 혼란

'주68시간' 넘는 현장 많은데

정부 교통정리 없어 우왕좌왕

재량근로도 스태프 포함 불발

게임개발 업무만 인정 가능성

탄력근무제 확대도 진척 더뎌

영화 ‘7년의밤’ 제작현장.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  /사진제공=CJ E&M영화 ‘7년의밤’ 제작현장.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 /사진제공=CJ E&M



지난 6월 11일 영화진흥위원회는 근로시간 단축을 핵심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관련한 ‘영화계 현안 설명회’를 열었다. 영진위는 이날 행사에 참석한 업계 관계자들에게 29쪽짜리 설명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 하지만 이 자료만으로 업계의 궁금증을 해소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대부분이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홈페이지나 법안에 나오는 내용을 요약·정리한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가장 민감한 현안 중 하나인 영화·방송 스태프의 근로자성 인정 여부에 대해서도 속 시원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대신 영진위와 공동으로 설명회를 주최한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른 시일 안에 문화·예술계를 위한 근로시간 단축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제도의 연착륙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3개월 정도 흐른 현재 문체부는 다음 달 공개를 앞두고 막바지 가이드라인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 가이드라인 역시 핵심 현안과 관련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각종 판례와 현장 사례를 종합한 수준이어서 업계의 혼란을 줄이는 데 별반 역할을 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서울경제신문이 30일 입수한 가이드라인은 스태프 근로자성 인정 여부, 촬영 중 이동과 대기 시간 등 대부분의 민감한 현안에 대해 “개별 사안별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에 따라 영화·드라마·방송 등에 해당하는 ‘영상·오디오 기록물 제작 및 배급업’과 ‘방송업’이 특례업종에서 삭제되면서 이들 산업의 사업장은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지난 7월부터 ‘1주일 68시간’의 근로시간 제한을 적용받고 있다. ‘1주일 52시간’은 유예기간을 두고 기업 규모별로 내년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에 들어간다. 제도가 갑자기 바뀐 데다 정부가 명쾌하게 교통정리를 해주는 데에도 실패하면서 업계에서는 벌써 혼란이 나타나고 있다. 방송가의 한 관계자는 “드라마 촬영의 경우 ‘1주일 68시간’ 규정을 준수하지 못하는 현장이 생겨나면서 일부 스태프들이 제작사를 노동청에 신고하는 사례까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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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업계에서도 근로시간 단축 제도의 취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문화·예술계에 만연한 살인적인 노동 관행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의를 달기 힘들다. 하지만 업계 종사자들은 특정 시기에 연장·야간 근로가 몰릴 수밖에 없는 콘텐츠 산업계에 일률적으로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업종의 개성과 특성이 뚜렷한 문화 산업계에 일률 적용하면 세계를 무대로 누비는 한류 산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정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는 “밤샘 촬영을 했으면 다음날 오전·오후에는 휴식을 취하라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기본 정신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제작사와 현장 스태프의 중간에서 확실한 기준을 잡고 혼란을 최소화해야 하는 정부 역할에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업계의 요구 사항 중 하나였던 탄력근무제 확대 역시 당분간 뚜렷한 진척을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가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2주 또는 3개월 단위로 운영할 수 있다. 2주 단위로 운영한다고 가정하면 업무량이 많은 첫째 주는 58시간을 일하고 상대적으로 일이 적은 두 번째 주는 46시간 동안 근무를 해서 전체적으로 평균 52시간을 맞추는 식이다. 업계는 2주 또는 3개월 단위로만 가능한 운영 기간을 최대 1년까지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영화·방송 스태프의 재량근로 대상 포함도 사실상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문체부는 현재 작성 중인 가이드라인에 “콘텐츠 업종 가운데 게임 개발과 관련한 업무는 재량근로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재량근로제는 업무 특성상 근로시간을 일정하게 산출하기 쉽지 않은 경우 노사 간 서면 합의로 근로시간을 인정하는 제도다. 현재 재량근로 대상에는 △신기술 연구개발 업무 △정보처리 시스템 설계 업무 △신문·방송 등의 취재·편집 업무 △영화·방송 제작 현장의 감독·프로듀서 업무 등이 포함돼 있다. 재계 관계자는 “특례업종과 달리 노사 합의로 근로시간을 인정하는 재량근로제는 ‘1주일 52시간(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 전에는 68시간)’의 범위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며 “다만 재량근로제에 포함되면 근로감독의 영향권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말 그대로 ‘재량’에 따라 근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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