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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영의 해외경매이야기] 美·유럽·亞 시장서 폭넓은 인기...트레이드 마크 '호박' 조각작품 16억

끝모를 호박 사랑의 쿠사마 야요이

초등학생때 가정불화 겪으며 호박에서 '마음의 평화' 찾아

60년동안 회화·조각·드로잉·판화·설치작품 소재로 등장

1993년 호박의 무한복제 '인피니티 미러 룸'으로 명성 얻어

쿠사마 야요이의 2007년작 ‘무제(호박 조각)’. 폭 1m의 입체작품으로 지난 6월 소더비 홍콩 경매에 출품돼 약 16억원에 낙찰됐다. /사진출처=소더비쿠사마 야요이의 2007년작 ‘무제(호박 조각)’. 폭 1m의 입체작품으로 지난 6월 소더비 홍콩 경매에 출품돼 약 16억원에 낙찰됐다. /사진출처=소더비



2018년 상반기 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의 거래 총액은 지난해보다 18% 성장한 약 9,500억 달러였다고 미술시장 분석 전문지 아트프라이스(Art Price)가 최근 발표했다. 거래 작품 수는 26만 여 점으로 전년 대비 2.5% 상승했다. 전년 대비 48% 상승해 상반기에만 약 3,800억 달러가 거래된 미국 시장의 호황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지역도 더불어 상승세를 보이며 전반적으로 거의 모든 지표에서 좋은 흐름을 보여주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2017년 상반기에 9%, 하반기에 32% 상승을 기록한 데 이어 2018년 상반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지속적인 상승세’는 가을 경매 시즌의 본격 개막을 앞두고 하반기 실적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해 보인다.

‘아트 프라이스’가 발표한 지표 가운데 상반기 가장 많이 팔린 작가 20명의 작가별·지역별 거래량에 대한 데이터가 흥미롭다. 피카소나 앤디 워홀 등 서양의 작가들은 주로 뉴욕과 런던을 중심으로, 그리고 자오우키와 장다치엔 같은 중국의 작가들은 주로 홍콩을 비롯한 중국 시장에서 거래가 일어났다. 그중 몇 작가는 거래가 한 지역에서만 이뤄져 대부분의 작가들이 시장에 지역적 편중이 있음을 드러냈다. 그중 일본의 여성 작가인 쿠사마 야요이는 홍콩에서 약 50% 외에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기타 지역에서 30%, 뉴욕과 런던에서도 20% 가량의 거래돼 가장 폭넓은 시장성을 확인시켰디. 그녀는 거래 총액 면에서도 지난해 거래 총액인 6,600만 달러에 거의 근접한 6,200만 달러를 이미 올 상반기에 기록하며 계속적인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인기의 비결은 뭘까. 1929년 나가노현에서 태어난 쿠사마는 20대였던 1957년 자유를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당시 뉴욕에서 활동하던 도날드 저드, 조셉 코넬 등의 주류 작가들과 만나면서 그녀의 대표작이 된, 그물의 형태가 무한 반복되는 ‘인피니티 네트(Infinity Net)’ 페인팅을 시작했다. 작가이자 미술비평가이기도 했던 저드는 1959년 저명한 미술잡지 ‘아트뉴스(Art News)’에 쿠사마의 회화에 대한 평을 쓰기도 했다. 1972년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지만 미국에서의 10여 년은 그녀의 작품세계가 만들어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됐다. 당시 아시아 출신의 여성 작가로는 유일하게 뉴욕의 주류 미술계 안에서 활동했던 쿠사마는 1960년대 초반에는 대중을 상대로 다양한 퍼포먼스와 일련의 해프닝에도 참여했다. 그러면서도 절대 자신을 특정 그룹에 포함시키지 않았고 독자적인 행보를 고집했다. 그는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많은 수의 작품들을 쏟아냈으며 그 작품들은 미술 외의 영역으로도 확장돼 쿠션이나 과자에서부터 열쇠고리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상품들로 지금까지도 대중과 만나고 있다. 옷에 점 찍기를 좋아했던 소녀 쿠사마의 패션에 대한 관심은 또한 2012년 마크 제이콥스가 이끌던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다시 한번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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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일본 하라미술관에서 선보인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작 ‘미러룸(호박)’.1991년 일본 하라미술관에서 선보인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작 ‘미러룸(호박)’.


그런 쿠사마의 트레이드 마크는 ‘호박(Pumpkin)’이다. 지난 5월과 6월 홍콩에서는 크기도 비슷하고 제작 시기 또한 비슷한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색 호박 조각 두 점이 각각 크리스티와 소더비를 통해 출품돼 불과 며칠 사이에 연달아 경매에 올랐다. 각각 2006년과 2007년 제작된 것으로 쿠사마를 상징하는 대표적 주제인 호박을 가로·세로·높이 각 1m 남짓한 사이즈의 입체 형태의 조각으로 만든 것인데, 시장에서도 가장 선호되는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 물방울무늬의 조합이 리드미컬하고 발랄한 호박의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는 작품이다. 일반적으로는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작가의 유사한 작품이 여러 점 출품되는 것은 경매 회사들이 기피하는 일이다. 잠재적 구매자들의 관심이 분산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인데 이런 우려가 무색할 만큼 두 점은 모두 열 띤 경합 끝에 각각 약 1,070만 홍콩달러(약 15억원)와 약 1,150만 홍콩달러(약 16억원)에 판매됐다. 같은 시기에 서울옥션(063170)의 홍콩 경매에서는 1990년대에 제작된 높이 20cm 정도의 호박 조각 한 점이 약 2억 5,000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쿠사마 야요이의 대형 ‘호박’은 1994년 일본 나오시마섬에 야외조각으로 설치돼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 Yayoi Kusama, Yayoi Kusama Studio inc.쿠사마 야요이의 대형 ‘호박’은 1994년 일본 나오시마섬에 야외조각으로 설치돼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 Yayoi Kusama, Yayoi Kusama Studio inc.


쿠사마의 호박에 대한 사랑은 어릴 때부터 시작됐다. 가정불화로 불행한 초등학생이던 그녀는 어느 날 할아버지를 따라 나간 밭에서 우연히 덩굴에서 자라는 호박을 발견했고 순간 그 호박이 말을 걸어오는 환영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호박은 쿠사마에게 가장 만지기에도 부드럽고 색과 형태가 매력적인 대상이 됐다. 그녀에게 마음의 평화를 찾아주는 일종의 치료제이기도 한 호박은 이후 60년동안 작가가 끊임없이 회귀하는 소재로 회화·조각·드로잉·판화·설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1991년 하라 미술관 전시에서 선보인 ‘거울의 방-호박( Mirror room-pumpkin)’은 1993년 제45회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에서 ‘인피니티 미러 룸’으로 재탄생했고, 거울의 방 속에 수많은 호박들이 무한히 자기복제를 하고 있는 이 작업으로 쿠사마는 국제적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1994년 일본 나오시마에 최초의 야외 조각으로 설치된 후로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크기의 호박 조각들을 만날 수 있다.

국제적으로는 주류의 흐름에 닿아있으면서도 그녀의 이미지들은 특별한 개인사를 반영하며 매우 독자적이다. 거기에다 폭넓게 어필하는 대중성까지도 갖춰 쿠사마는 현대 미술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시장의 지속적인 상승세가 과연 언제까지 그리고 어디까지 갈 것인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는 그녀는 현재 생존하는 가장 비싼 작가 중의 하나이며, 그녀의 호박은 2018년 현재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가장 인기 있는 이미지 중 하나다.
/서울옥션 국제팀 이사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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