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용서 단국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업체와 비메모리 업체 간 짝짓기가 부쩍 활발해지는 것은 물론 반도체 활용범위 확대에 따른 반도체 업체와 이종 업체 간 합종연횡도 급증 추세”라며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이 대량 생산에서 설계 및 개발 능력으로 무게중심이 옮아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설계 업체 인수 통해 토털 솔루션 업체로 변신=르네사스는 지난 2010년 르네사스테크놀로지와 NEC에서 분사한 NEC일렉트로닉스가 합병해 탄생했다. 설립 당시 매출 기준 세계 6위 반도체 제조사였을 만큼 한때 세계를 호령했다. 하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공장이 손실을 크게 입으며 사세가 기울었다. 수년 전부터는 일본 관민 펀드인 산업혁신기구와 도요타자동차 등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고 경영 정상화를 추진해왔다. 이후 반도체 시장의 호황에 힘입어 경영난을 극복했다. 특히 한화 7조5,000억원에 IDT 인수에 성공해 반전의 계기를 잡았다는 평가다. IDT는 메모리 인터페이스에 칩을 공급하는 업체다. 자율주행차와 사물인터넷(IoT) 분야에 경쟁력을 갖췄다. 르네사스는 이번 짝짓기를 통해 자율주행차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통신용 반도체 기술력을 흡수해 이 분야에서 앞서 나가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르네사스의 IDT 인수가 일본 반도체업계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며 “일본 기업들이 반도체 설계·개발 쪽으로 더 특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짚었다.
◇변곡점 맞은 반도체 산업, M&A 증가세 뚜렷=최근 수년 새 반도체 산업은 ‘M&A 성수기’다. 퀄컴의 NXP 인수, 아바고테크놀로지스의 브로드컴 인수와 같은 메가 딜부터 파워반도체(전압 변환용 반도체) 업체인 페어차일드와 온세미의 M&A 등이 수시로 있었다. 삼정KPMG에 따르면 반도체 M&A 시장은 2013년 244건부터 2016년 274건으로 커졌다. 같은 기간 거래 규모도 200억달러에서 910억달러로 뛰었다. 이런 경향은 현재도 지속 중이다.
최근에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짝짓기가 활발하다. 주로 설계 쪽이라 소량 다품종 성격이 강한데 작은 회사끼리 합종연횡을 통해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구 교수는 “반도체 칩의 수요 증가로 시장이 커지는 만큼 치킨 게임에 대비하는 것”이라며 “파워 반도체, 아날로그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는 회사 이름을 일일이 확인해야 할 정도로 M&A가 잦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내 기업의 M&A 시도는 주춤하다. 삼성전자의 경우 전장 업체 하만 인수 이후 굵직한 사례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기업 인수에 나서고 있는데 최근에는 수년간 20조원을 M&A에 투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SK하이닉스도 도시바의 지분을 인수한 후 M&A가 뜸하다. 반도체 업계의 한 임원은 “전통의 반도체 강자 일본과 후발주자 중국 등이 모두 합종연횡을 통해 경쟁력 키우기에 혈안”이라며 “국내 업체의 경우 AI·빅데이터 등의 분야 스타트업을 주로 보고 있는데 시장의 환경 변화에 맞춰 소프트웨어화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