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냉전기 미소(美蘇)정상회담의 교훈

소련 힘기른후 대화한 것처럼

북한도 자신감 바탕 회담 나서

비핵화·경협 철저히 따져 협상

진정한 변화위한 결단 설득을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환대는 예상된 것이었지만 북측이 비핵화에 얼마나 성의를 보일지는 알 수 없다. 치열한 토론이 예상되지만 실무회담의 제한된 틀을 뛰어넘어 정상회담을 통해 문제를 푸는 톱다운(top-down) 방식은 예로부터 많은 역할을 해왔다.


현대 역사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은 20세기 냉전기의 미소관계가 아닐까 싶다. 당시 세계의 패권을 놓고 다퉜던 양국은 지난 1990년 10월 독일 통일 전까지 총 22차례의 정상회담을 열었다. 이 중 세 차례는 2차 세계대전 종전과정에서의 만남이었기에 냉전기의 정상회담은 총 19차례였다. 한반도는 아직 냉전구조가 남아 있어 그런지 당시 미소 정상회담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첫째, 소련이 미국과 대등하다는 자신감을 갖는 순간 대화가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 종료 이후 미소 양국은 급격한 관계악화를 겪는데 소련은 철의 장막을 치며 미국과의 대화를 닫았고 세계 공산화에 치중했다. 첫 정상회담은 195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됐다. 소련이 수소폭탄 제조에 성공한 후였다. 그래서였는지 제네바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대량살상무기 군축을 위한 항공통제였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없던 시절 항공기를 통한 핵무기 운반을 제한하려는 것이었다. 힘을 길러 그 힘을 기반으로 정상회담에 나온 것이다.


둘째, 필요가 정상회담을 이끌었다. 한동안 소강국면을 보이던 미소 정상회담은 1970년대 초반 활발히 재개된다. 1972년부터 1975년까지 매년 정상회담을 여는데 실전에 활용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로 더욱 위험해진 핵무기 군축이 핵심 의제였다. 양측이 모두 필요로 했던 의제였기에 협상에도 진전이 있어 핵전쟁방지협정과 전략무기제한협정(SALT-I)이 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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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진정성 있는 변화가 실질적 성과를 냈다. 1979년 12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다시 악화된 미소 관계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이 시작되는 1985년 재개돼 1990년 냉전 종식까지 매년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특히 소련은 경제건설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했고 그 결과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과 독일 통일이 이뤄진다.

북한이 정상회담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북한을 대화로 이끄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본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해 11월30일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에야 대화 자리에 나왔다. 1955년 제네바 정상회담에 합의한 소련과 유사하다. 북한의 자신감을 간과한 채 우리가 무언가를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비핵화와 경제협력, 그리고 재래식 군사 신뢰 구축에서 철저한 계산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북한은 경제 건설의 필요로 정상회담에 임하고 있다. 하지만 핵 무력을 보유한 채 경제건설을 하려 들 가능성이 있다. 북측 입장에서는 최선의 대안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경제건설이 가능하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비핵화 과정을 확인하면서 경제지원을 해야 한다. 북한이 불쾌하게 받아들여 대화의 판을 깬다면 아직 필요를 덜 느끼기 때문이다. 북한이 경제건설을 원한다면 기회는 다시 올 수 있다.

북한의 진정성 있는 변화만이 실질적 성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무엇보다 김정은 위원장이 전략적 결단을 내리도록 유도해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상황에서도 한국과 미국이 공격하지 않았는데 북한이 개혁개방을 택할 경우 공격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잘 설득해야 한다. 경제적 지원과 주민생활 향상이 보장됨은 물론이다. 평화공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진정성도 보여줘야 한다. 그래도 결단이 없다면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이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지 않는 수석협상가(chief negotiator)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적 정상회담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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