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개봉한 ‘협상’(감독 이종석·제작 JK필름)은 태국에서 사상 최악의 인질극이 발생하고, 제한 시간 내 인질범 ‘민태구’(현빈 분)를 멈추기 위해 위기 협상가 ‘하채윤’(손예진 분)이 일생일대의 협상을 시작하는 범죄 오락 영화.
이번 영화에서 현빈과 손예진은 배우 인상 최대의 변신을 꾀했다. 최악의 인질범 민태구 역을 맡은 현빈은 이를 통해 첫 악역 연기에 도전했으며, 손예진은 서울지방경찰청 위기협상팀 소속 협상전문가 하채윤 역을 맡아 첫 경찰 캐릭터를 소화했다. 젠틀한 이미지 배우 현빈이 ‘잘생김’을 내려놓고, 찰지게 욕을 구사하는 게 자연스럽고, 웃는 모습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 손예진이 한 번도 웃지 않는 영화이다.
이종석 감독은 ‘캐스팅의 반전’을 생각했던 게 “반전이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민태구 역은 욕을 찰지게 잘하는 분이었지만 결국 정 반대(?)의 현빈이 낙점됐다. 하채윤 역 역시 처음으로 경찰 제복을 입은 손예진이 캐스팅 됐다.
“지금까지 그런 연기를 하지 않았던 분, 하지만 그런 연기를 보고 싶은 배우 분이 누굴까 생각했어요. 바로 현빈과 손예진씨가 떠올랐어요. 예진씨랑 빈이씨 작품을 첫 작품부터 다 돌려봤어요. 돌려보면서 확신이 들었어요. 배우들도 새로운 모습에 대한 갈증이 있던 차였는데, 저희 작품 의도랑 ‘탁’ 걸려서 의기투합했던 것 같아요. 같이 시나리오 수정 작업도 해 가면서, 포인트마다 반전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어요.”
“전 당연히 목숨 걸었죠. 저 뿐 아니라 예진씨 빈씨 이렇게 3명의 마음이 잘 맞아 걸린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이종석 감독은 ‘좋은 걸 버리자’는 원칙을 세우며 새로운 영화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그 첫 번째가 ‘좋은 시나리오 설정 버리기, 두 번째가 ’잘생긴 현빈 버리기‘, 세 번째가 ’손예진이 잘 하는 연기 버리기‘ 였다.
“시나리오도 가장 좋은 설정을 버리면 새로운 게 나와요. 진짜 좋은 걸 버리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알던 현빈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죠. 현빈은 뭔가 사기꾼 역할을 해도 항상 반듯하고 그런 느낌이었는데, 완전히 다 내려놨어요. 저희 영화에선 껄렁 껄렁한 현빈을 만날 수 있어요. 현빈씨는 이전까지 세트에서 영화를 찍어도 거기서 안 잤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이번엔 세트장 옆에서 방을 잡아놓고 그 시간도 줄여서 같이 고민하고 태구로 살았어요. ”
“ 예진씨는 영화에서 한 번도 안 웃어요. 정말 웃는 게 어울리는 배우잖아요. 저도 몰랐어요. 예진씨가 웃는 장면이 없다는 걸. 조명기사 분이 ‘예진씨는 역시 웃어야지’란 말을 해서 문득 깨달았어요. 정말 연기로 인정 받는 작품이랄까요. 잘 할 수 있는 걸 다 버리고 새로운 걸 한 거죠. ‘덕혜옹주’도 새롭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 하고는 달랐던 작품입니다. 작품에 몰입하기 위해 애 쓴 게 다 보였던 시간들이었어요. 배우에게 가장 큰 도전이었으리라 생각해요. 두 배우가 말은 그래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짐작이 됩니다.”
“배우와 캐릭터의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종석 감독의 의도는 적중했다. 배우들이 캐릭터인 척 하는 게 아닌, 한 채윤, 민태구가 그대로 스크린에서 튀어나왔으니 말이다.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실시간 이원촬영 기법이다. 이종석 감독은 협상가와 인질범 캐릭터의 대립과 대치가 극을 이끌어가는 가장 큰 틀이자 핵심이라고 판단, 긴장감을 높일 수 있는 실시간 이원촬영 방식을 영화에 도입했다. 이에 대해 감독은 “한정된 공간, 제한된 시간 안에서 긴장감을 끌고 가기 위해 선택했다. 연출하는 사람으로서 도전이었다”고 했다. ‘국제시장’ 조감독 출신인 이종석 감독은 ‘국제시장’ 때 도입했던 부분 이원촬영 방식을 이번 ‘협상’에서 전체 이원촬영 기법에 도전했다. 손예진과 현빈이 실제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연기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며 촬영을 해 갔다.
이원촬영 기법엔 배우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현빈은 “처음엔 작은 모니터를 보고 숨소리와 대사를 처리하는게 마치 연극을 공연하는 느낌이었다. 낯설고 힘들었는데 점점 익숙해졌고 또 흐름상 굉장히 잘 어울리는 촬영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손예진 역시 “제한된 공간 안에서 상대 배우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모니터로만 연기하다보니 손발이 묶인 듯 했다”며 “ 촬영내내 마치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컷’ 없이 쭉 가야 하는 이원촬영 기법을 처음엔 낯설어하던 배우들도 나중에는 몰입하며 좋아했다고 한다. 감독은 마치 “ 연극을 보는 느낌으로 촬영을 이어갔다”고 전했다.
“서로 틀리면 안되니까 긴장감이 극대화된 현장이었어요. 말도 조심스럽게 했으니까요. 촬영하면서 이건 OK. 저건 NG 가 아니라, ‘저 배우의 연기 좋았어’. 혹은 ‘감정 다시 가고 싶다’는 식으로 촬영이 진행됐어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극대화한 방법으로 했죠. 도망갈 때 없으니까 서로 민태구와 하채윤이 돼 갔던 것 같아요. 전 중간에서 정신이 없었죠. 가까이 찍고 멀리 찍는 방식이 아니라 한번으로 쭉 가야했으니까요.”
‘협상’으로 첫 입봉작을 세상에 내 놓은 이종석 감독, 긴장감 넘쳤던 현장의 그 기운을 여전히 느끼고 있다고 했다. 당시에도 “웃는 게 마치 죄짓는 것 같아서 정신 없이 찍었다”고 털어놨다.
“솔직히 뭘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조감독 때 연출부에게 말하는 건, ‘생각하지 마. 열심히 뛰어다녀야 해. 생각해서 판단하려고 하면 이미 늦는다’고 말하곤 했는데, 제가 딱 그랬던 것 같아요. 뭐든지 열심히 하려고 애를 썼던 것 같아요. 작품이 더해지면 힘 뺄 때, 더해야 할 때를 알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협상’이란 영화가 이제야 숨 쉴 수 있고, 소주 먹고 이야기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당연한 거라 생각합니다. 영화는 절대 혼자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감독인 제가 제시한 방향을 스태프와 배우들이 구현을 해주신거죠. 영화 ‘협상’, 현빈, 손예진, 그리고 감독 이종석으로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연스런 연결고리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