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디 고운 대갓집 애기씨. 스물 아홉이 넘도록 야속한 정혼자 때문에 시집을 못간 그녀는 비밀이 많다.
의병으로 죽은 부모, 이로 인해 자신을 지킬 만큼만 단련하라 지시한 할아버지. 스승인 포수 장승구(최무성)와 의병들. 천상 여인 고애신(김태리)은 강하다.
낭만의 시대였다. 가베와 빵, 박래품(수입품), 화려하게 치장된 양장까지. 서양 문물이 물밀 듯 들어오던 시기 그녀의 관심사는 오직 새로운 총 뿐이었다.
친일파 미국인을 제거하던 날 그를 처음 만났다. 적인지 동지인지, 내 쪽으로 걷는다는 그에게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라 답했다. 이후에도 계속해 마주치는 유진 초이(이병헌). 고애신은 그에게 “내 낭만은 독일제 총구에 있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는 웃어넘기는 듯 했다. 사대부 애기씨가 갖기엔 과격한 낭만 같다면서.
그로 인해 고애신은 싸워야 하는 이유를 알았다. 이 나라에 누가 살아야 하는지, 주인은 누구이며 지키려는 자들은 누구인지. 있는 자들과 없는 자들, 권력층과 피지배계층, 그리고 국가간의 약육강식.
그녀의 결심이 굳어질수록 그녀를 지키려는 이들은 늘어났다. 러브를 함께 하자는 유진 초이(이병헌), 오직 그녀를 위해 자신이 버린 조국으로 돌아온 구동매(유연석), 한참을 방황한 후에야 제자리를 찾은 김희성(변요한). 이들은 총과 칼, 그리고 펜으로 무장하고 그녀를 위기로부터 구하기 시작한다.
살라고. 오직 그녀의 목숨을 위해 달려드는 이들의 영웅담 모두 의병 전쟁의 일부가 됐다. 모리 타케시(김남희)를 죽이고, 자신이 소속된 무신회를 급습하고, 집안 말아먹을 호외를 발행하고. “나라 꼴이 이런데 누군가 싸워야 하지 않겠냐”는 그녀의 말과 달리 이들의 무기는 오직 고애신의 안전만을 바랄 뿐이다. 그녀는 말한다. “고맙소. 나란히 걷는다는 것이 참 좋소. 나에겐 다시 없을 순간이라. 지금이.”
그녀의 삶은 꽃이다. 불꽃. 화려하게 타올랐다 사라지는. 그녀의 거사도 불꽃을 닮았다. 양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면 그저 의병이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살겠지만,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줄이면 되는 의병.
사랑을 확인하며 일본에서의 임무를 마친 후 그는 혼자가 됐다. 온전한 의병이 됐다. 그녀를 지켜낸 남자들은 고된 날들을 겪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3년 뒤, 그녀는 건(Gun)을 들고 글로리(Glory) 호텔에서 불꽃으로 타올랐다.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꽃 앞에서 다시 그녀를 찾은 유진 초이와 구동매는 결국 피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과 맞닥뜨렸다. 끝까지 말리고자 했으나 더 이상 빠져나올 방법이 없는 슬픈 운명. sad ending.
어제는 멀고 오늘은 낯설며 내일은 두려운 격변의 시간이었다. 그녀는, 아니 그들을 사랑한 모두가 그렇게 각자의 방법으로 격변하는 조선을 지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