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정책

[로터리]대표사원의 캐리커처

박일준 한국동서발전 사장




첫 만남에서 주고받는 명함은 첫인상인 동시에 가장 오래 기억될 인상을 남긴다. 휴대폰 번호조차 없이 직책과 이름·사무실 번호만 간단히 나와 있는 명함을 받을 때면 한번 명함을 주고받은 사이인데도 나중에 기억해내지 못할까 실망감이 든다. 반대로 상대방이 먼저 알아봐 주면 고맙기도 하고 서먹함이 이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나를 기억하기 쉽게 하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그래서 명함에 캐리커처를 넣은 것이 10여년 가까이 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근무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배움에 힘을 쏟는 모습, 경청하는 모습, 부지런히 발로 뛰는 모습 등 다양한 캐리커처를 활용했다. 근무부서와 직위가 정해지면 매번 그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일, 내게 주어진 역할을 고민해 캐리커처 전문가에게 초안을 부탁하고 결과물에 대한 의견을 수차례 주고받는 과정을 거쳐 완성했다.


명함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알리는 것이니 이왕이면 얼굴까지 기억해달라는 뜻에서 캐리커처를 넣기 시작했는데 처음 만들 당시에는 그리 흔하지 않았기에 관련된 일화가 많다. 정치인이나 자동차를 판매하시는 분들이 주로 명함에 얼굴을 넣는다면서 혹시 정치에 뜻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고 한 국회의원은 캐리커처 명함 제작사를 소개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한 적도 있었다. 캐리커처 넥타이에 포인트를 주기 위해 파란색이나 빨간색으로 색깔을 넣었는데 국회 비서관들의 경우 왜 상대 정당의 색깔을 넣었느냐고 심각하게 물어본 적도 있다. 외국에서는 사진을 넣는 경우가 잘 없다 보니 외국인들이 받으면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어느 미팅자리에서든 상대에게 주면 대부분 명함을 자세히 보면서 캐리커처를 잘 그렸다든가 젊어 보인다는 등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가 트이는 분위기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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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발전에 부임해서는 새 명함에 ‘대표사원’으로 경청하는 의미의 캐리커처를 담았다. 첫 만남 이후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소통은 경청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에서다. 취임 후 한 달 동안 전 사업소를 돌며 직원들과 소통하고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달에는 사무실에서 나와 일일 교대근무 직원으로 발전소 현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근무하면서 조금이나마 더 현장상황을 알게 되고 직원들과도 가까워진 것 같다. 사람 인(人)자가 두 명이 서로 기대선 모양으로 이뤄져 있듯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가정에서는 식구, 직장에서는 동료와 서로 기대어 살아가야 한다. 작고 네모난 명함 한 장에 담긴 배려의 의미를 되새기며 직원들에게 기꺼이 기댈 수 있는 곁을 내어주고자 한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기대기도 하는 대표사원이 되고 싶기도 하다.

김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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