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이탈렉시트' 우려에 유럽시장 출렁...'제2 PIIGS 공포' 확산

伊 예산위원장 '脫유로' 언급에

주가 장중 1.8%까지 떨어져

달러당 유로화가치도 0.15% ↓

그리스도 합의 깨고 재정 완화

2010년 유로존위기 재현 가능성

伊 경제장관 “2020년까지 재정적자 줄일 것”

이탈리아 의회의 고위인사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 이른바 ‘이탈렉시트(이탈리아의 유로존 탈퇴, Italexit)’를 시사하면서 이탈리아 국채가격이 4년 6개월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영국에 이은 ‘탈유로’ 선언으로 이탈리아가 유로존을 뒤흔드는 태풍의 핵으로 급부상한 가운데 이제 막 구제금융을 벗어난 그리스가 재정위기 극복을 위한 연금삭감 추진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더해져 유럽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2010년 그리스의 구제금융이 ‘PIIGS(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위기를 불렀듯 이탈리아의 재정불안이 제2의 그리스 사태로 번져 또 한번 유로존을 뒤흔드는 진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클라우디오 보르기 이탈리아 하원 예산위원장은 2일(현지시간) 공영 RAI 라디오에 출연해 유로 대신 이탈리아 자체 통화가 필요하다며 유로존 탈퇴를 주장했다. 보르기 위원장은 “우리의 자체 통화를 보유하면 현재 안고 있는 문제들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경제 회복 정책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통화 정책 면에서 이탈리아의 자체 수단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사사건건 유럽의회와 부딪히는 이탈리아가 이번에는 의회 고위인사가 ‘탈유로’를 얘기하면서 유로존 위기에 불을 지피고 있는 모양새다. 보르기 위원장은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함께 포퓰리즘 정부를 구성하는 극우 정당 ‘동맹’ 소속이다. 유럽연합(EU)을 적대시해온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의 경제 자문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보르기 위원장의 발언이 이탈리아의 공식 입장이 아니냐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이유다.

문제는 가뜩이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협상 난항으로 뒤숭숭한 상황에서 이탈렉시트 우려가 커지면서 유럽 금융시장을 출렁거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이날 15.5bp(1bp=0.01%포인트) 급등한 3.445%에 거래를 마치며 2014년 3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이탈리아 리스크의 지표로 인식되는 이탈리아와 독일 10년물 국채 금리차(스프레드)도 장중 300bp를 넘어서면서 2014년 3월 이래 최고치로 치솟았다. 이탈리아 대표 주가지수인 FTSE MIB는 장중 1.8%까지 빠졌으나 하락폭이 좁아지며 0.23% 떨어진 2만561.31에 거래를 마쳤다. 유럽의 환율시장도 연동하며 꿈틀거렸다. 달러당 유로화 가치는 0.15% 떨어져 5거래일째 하락세를 이어가며 6주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해 3월 이탈리아 총선에서 오성운동과 동맹당이 선전하면서 이탈리아 문제는 줄곧 유럽을 괴롭혀왔다. 지난달 28일 포퓰리즘 정부가 내년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2.4%로 설정하고 재정투입을 늘리기로 하면서 스프레드가 치솟고 증시가 급락한 바 있다. 저소득층에 월 780유로(약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제공하고 감세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전임 정부가 설정한 내년 재정적자(0.8%) 대비 3배에 달하는 목표치를 설정한 것이다. 이탈리아의 GDP 대비 부채는 131%로 유로존에서 두 번째로 높아 자칫 이탈리아의 시장 혼란이 유로존에 곧바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곧바로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페이스북에서 “이탈리아는 EU와 유로화의 창립 멤버로 유로가 우리의 통화라는 사실은 변할 수 없다. 이와 다른 견해를 밝히는 모든 발언은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전혀 무관하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에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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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금융에서 막 벗어난 그리스가 유로존을 뒤흔들 수 있는 변수로 또다시 떠오르면서 유럽연합(EU)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그리스 정부가 1일 공개한 내년도 예산안 초안에 연금삭감을 유예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투자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초안에 연금삭감과 연금삭감 유예 등 두 가지 안이 동시에 담기면서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정부가 채권단의 기대와 달리 연금삭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줬기 때문이다. 내년도 재정흑자를 GDP의 4.14%로 설정하면서 오는 2022년까지 연간 재정흑자를 GDP의 3.5%로 유지한다는 채권단과의 약속은 지켰지만 연금을 추가로 삭감하겠다는 기존 합의는 깰 가능성이 생겼다. 이는 집권당인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지지율이 제1야당 신민주당에 10%포인트 넘게 뒤지자 내년 총선을 고려해 일부 재정을 완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UBS의 리카르도 가르시아 유로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그리스는 내년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일부 재정을 완화해야 한다는 상당한 압박에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이탈리아의 위기 조장에 그리스 복병이 겹치면서 일각에서는 2010년 유로존을 뒤덮었던 ‘PIIGS’ 위기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2010년 5월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재정상태가 좋지 않던 남유럽의 민낯이 드러났던 상황이 또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그리스 채무 위기에서 비롯된 유로존 위기를 또다시 겪어서는 안 된다며 조만간 EU로 제출될 이탈리아 정부의 예산안에 엄밀한 잣대를 들이대 위기 해소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탈리아 내부에 반EU 분위기가 강해 양측의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제2의 그리스 사태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높아지는 분위기다.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이탈리아 사태가 주변 스페인과 포르투갈 시장 등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며 “다만 그 파급력이 유럽 전체를 흔들 부채 폭탄으로 확산될지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재정적자 규모를 2020년부터 점진적으로 줄일 것이라고 조반니 트리아 경제장관이 3일 밝혔다. 이는 예산안을 고수하겠다던 이탈리아의 입장이 달라졌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탈리아가 과도한 적자 재정에 반대하는 유럽연합(EU)의 압력 때문에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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