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말고는 특별한 질환이 없는 49세 여성 H씨는 최근 왼쪽 눈 시력이 평소 1.0에서 0.2로 크게 떨어졌다. 서울대병원이 위탁운영하는 서울시보라매병원 안과 망막클리닉(김태완·안지윤 교수)을 찾았더니 망막 혈관폐쇄증이라는 낯선 진단을 받았다. 혈압이 대체로 잘 조절됐고 평소 몸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어서 당황스러웠다. 고혈압 환자 중에는 당뇨·고지혈증을 동반한 경우가 많다. 망막의 동맥·정맥이 혈전으로 막히면 통증 없이 갑자기 심한 시력저하가 발생한다.
H씨는 유리체강(수정체와 망막 사이 안구 속을 채우고 있는 무색 투명한 젤 형태의 구조물)에 항혈관내피성장인자 주사, 망막레이저 치료를 받고 증상이 호전돼 정기적으로 경과관찰을 받고 있 다.
김태완 교수는 “망막혈관폐쇄증은 당뇨망막병증 다음으로 흔한 망막혈관 질환”이라며 “고혈압·당뇨병·심혈관계 질환 등을 가진 나이 많은 사람에서 흔하지만 최근에는 30~40대 연령층에서도 발생이 증가하는 추세여서 고혈압·당뇨병 등 위험인자를 가진 경우 특별한 증상이 없어도 안저검사를 정기적으로 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안저검사는 1~2년에 한 번 받는 국가검진(생애주기별 국민건강검진) 항목에 빠져 있어 조기·정기검진이 미진한 실정이다.
당뇨병을 앓아온 58세 남성 K씨는 지난해 8월 당뇨망막병증의 합병증인 ‘증식 망막병증’ 진단을 받았다. 혈당관리에 꽤 신경을 썼지만 망막증이 더 진행돼 최근에는 ‘유리체 출혈 및 신생혈관 녹내장’ 진단을 받았다.
오랜 기간 당뇨병을 앓다 보니 망막혈관, 특히 미세혈관에 혈액순환장애가 생겨 정상적인 혈관벽 구조를 갖추지 못한 신생혈관이 마구 자라나 망막에 이어 유리체까지 침투했다. 투명해야 할 유리체 안에서 신생혈관이 터져 시야가 잔뜩 흐려졌다. 증식 망막병증은 신생혈관이 자라 망막·유리체 출혈, 망막박리 등을 일으켜 심각한 시력저하를 일으킬 수 있다. 치료를 위해 레이저 시술(범안저광응고술)을 시행하고 충분하지 않을 경우 유리체절제술, 망막을 잡아당기는 막을 제거하는 수술적 치료를 한다.
K씨는 출혈이 일어난 유리체를 걷어내는 유리체절제술을 받고 적극적인 혈당관리로 시력이 회복됐다. 하지만 상당히 진행된 단계의 당뇨망막병증 환자는 어떤 치료법을 써도 시력이 회복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런 망막질환자들에게 서울시보라매병원 망막클리닉은 특별한 존재다. 수년 전부터 당뇨망막병증에 의한 합병증 중 신생혈관 녹내장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연구를 해와서다. 환자의 방수(房水·눈의 각막 뒤~홍채와 홍채 뒤~수정체 사이에 들어 있는 액체) 및 혈청 단백체 분석을 통해 신생혈관 녹내장을 유발하는 단백질을 발굴하고 있다. 당뇨에 의한 신생혈관 녹내장에 특이적인 단백체를 발굴한다면 조기 진단 및 특정 단백체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안지윤 교수는 “당뇨망막병증을 예방하거나 늦추려면 정기 안저검사를 받고 혈당·혈중지질·혈압을 꼼꼼하게 조절하며 반드시 금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 조절이 안 되거나 눈에 당뇨합병증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환자는 내분비내과에서 망막클리닉으로 협진을 의뢰, 당일 진료(필요시 안저검사)를 한다.
김 교수는 “혈청내(혈중) 특이 단백질의 변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예후를 예측해 개인 맞춤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