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제게 한국의 이사회가 어떠냐고 물으면 ‘마네킹 이사회’라고 합니다. 이사들 개개인은 모두 훌륭한 분들인데 모아놓으면 이사회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23일 법무부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서울파르나스에서 개최한 ‘기업환경 개선 컨퍼런스’에 발제자로 나선 네덜란드 연기금 투자운용사 APG의 박유경 이사는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문제점으로 이사회를 지목했다. 그는 “이사 한 분 한 분이 지금보다 더 전문가로 진실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며 “또 정부 관료 출신보다 비즈니스 경험이 많은 이사들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 이사는 지배구조에 관한 법과 제도가 잘 마련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사와 총수 등 주요 주체들이 책임감과 선한 의도를 가지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 총수들이 죄인 취급을 받아 위축되면서 경제가 노후하는 영향이 있다고도 지적했다. 박 이사는 “외국처럼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경영 비전을 사회에 제시하고 서로 북돋아야 전체 경제에 활력이 생긴다”며 “너무 죄인 취급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박 이사는 제도적 측면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초래하는 요인으로 경영권 매각 시 의무공개매수제도가 없는 점을 꼽았다. 의무공개매수는 기업매수자에게 50%를 초과하는 지분을 소유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로, 소수 주주가 아닌 지배주주만 지분 매각 과정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을 누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는 “미국에는 의무공개매수제가 없는 대신 집단소송제가 있어 지배주주의 주식만 비싸게 사가기 어렵다”고 전했다.
박 이사는 최근 여당에서 추진하는 차등의결권 도입에도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차등의결권은 벤처기업의 경영권 방어와 원활한 자금조달을 위해 1주당 2~10개의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허용하자는 것이다. 박 이사는 “차등의결권은 일종의 대학 기여입학제로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라며 “1주당 1표 원칙을 무너뜨리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