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정상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시점이 무르익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2차 북미정상회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중대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데도 공감했다. 다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철회 등 양국 현안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할 일이 남아 있다”며 더 빠른 진전을 촉구한 반면 시진핑 주석은 “점차적으로 이행되고 있다”며 성과에 중점을 두는 등 시각차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 17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파푸아뉴기니에서 시 주석과 만나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과 북미 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 주석도 “일이 이루어지는 데 천시(天時·하늘의 때)·지리(地利·땅의 기운)·인화(人和·사람 간의 융화)가 필요한데 그 조건들이 맞아떨어져 가고 있다”고 답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각국의 정치적 상황과 지도자들의 호흡이 잘 맞아 긍정적인 변화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날 시 주석은 내년 남한과 북한을 모두 방문할 뜻도 밝혔다. 문 대통령이 시 주석을 서울에 초청하자 그는 “내년 편리한 시기에 방문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또 시 주석은 “김 위원장으로부터 북한을 방문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며 “내년에 시간을 내서 방북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문제 해결에 한목소리로 기대감을 표한 양 정상이지만 한중 문제에서는 의견 차를 나타냈다. 모두발언에서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정상회담 후 교역·투자·인적교류가 증가하는 등 한중관계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면서도 “국민들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게 계속 노력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베이징에서 연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양국 관계 개선을 약속했지만 사드 보복 해제, 미세먼지 등에서 기대보다 속도가 나지 않자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 반면 시 주석은 “문 대통령과 합의한 사안들이 점차적으로 이행되고 있고 중한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그동안의 이행상황에 방점을 찍었다.
문 대통령의 취임 이후 한중 정상회담은 이번이 네 번째이며 이날 만남은 약 40분간 진행됐다. 양측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분야 타결을 위해 논의를 진척시켜 나가기로 했고 미세먼지에 공동대응하기로 해다. 또 한국에 있는 중국군 유해송환 사업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아울러 시 주석은 2032년 하계올림픽 남북 공동개최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미중 무역전쟁 등 보호무역주의가 전 세계에서 확산하는 가운데 문 대통령은 17일 APEC 기업인자문위원회(ABAC)와의 대화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건강한 다자무역체제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각국의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18일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다 함께 잘 사는 혁신적 포용국가를 새 국가비전으로 채택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소득주도 성장, 혁신 성장, 공정경제만으로는 양극화·불평등·저성장을 이겨내기가 힘들다. 사회경제적으로 고착화돼 있기 때문”이라며 “경제정책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사회정책과 통합이 돼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디지털 격차가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이를 해소하기 위한 ‘APEC 디지털 혁신 기금’ 창설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만나서는 “신흥국에서 자금이 유출되고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하면 세계 경제가 다시 금융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