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간 성범죄 판결문을 조사한 결과 성범죄의 형량을 낮추는 데 ‘음주 여부’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음주 상태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 ‘심신미약’이 인정돼 형량이 낮게 선고된다는 이른바 ‘주취감경’은 실제 법원 판결문에서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두얼 명지대 제학과 교수는 19일 대법원 양형위원회와 형사정책연구원이 공동으로 개최한 ‘음주와 양형’ 학술대회에서 2007년~2017년 성범죄 판결문 속 ‘음주와 성범죄의 관계’, ‘음주가 선고형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통계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김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 기간 성범죄 재판 건수는 2007년 5,000여건에서 2017년 1만3,000여건으로 크게 늘었고, 음주 성범죄 비율은 2007년 25%에서 2017년 50%로 늘었다. 강간 사건은 50% 이상이 음주 이후에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음주 후 성범죄에 대한 양형은 오히려 비(非)음주 성범죄보다 높은 경향을 보였다. 2017년 비음주 성범죄에 대한 평균 형량은 징역 18개월가량이었지만, 음주 성범죄의 평균 형량은 약 26개월로 더 높았다. 김 교수는 “분석 결과 음주는 성범죄의 형량을 낮추는 요인으로 고려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집행유예 확률을 높이는 요인으로는 작용했지만, 2017년에는 이러한 경향이 크게 감소했다”고 밝혔다.
다만 성범죄 중 강간죄에서는 음주 범행이 비음주 범행보다 형량이 낮은 경향이 확인됐다. 2017년 강간범죄 중 비음주의 경우에는 평균 형량이 약 41개월이었지만, 음주 범행의 평균 형량은 32개월에 그쳤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이는 주취 감경의 결과가 아니라 회식·음주 등의 상황에서 일어나는 우발적 범행이 아닌 계획적 강간 범행 등에 가중처벌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경향은 다른 범죄에서도 나타났다. 학술대회 발표자로 참석한 최형표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은 “최근 5년간 살인범죄 판결을 분석한 결과 정신분열증 등에 의한 심신미약 감경이 법원에서 인정되는 비율은 전체 살인사건 중 12.41%였고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감경은 1.17%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이어 “주취 감경과 달리 정신질환에 의한 심신장애 감면을 계속해서 인정하는 것은 이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형사법의 대원칙인 책임주의 원칙에 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양형위원회는 이날 학술대회서 제시된 다양한 의견을 토대로 내부논의를 거쳐 조만간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기준을 마련해 공개할 방침이다. /권혁준인턴기자 hj7790@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