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노동정책, 첫 단추부터 다시 끼워라] 근무→휴게시간 꿰맞추기..."일은 일대로 하며 수당 못받아"

<하> '주 52시간' 기업에 자율권 줘야-끊이지 않는 혼란

비용 부담에 상여금의 기본급화...수당 대신 휴가 강요 편법 쓰기도

일시에 일감 몰리는 유화·건설, 인력 충원 어려워 업무 과부하

저녁 약속 잦은 영업·홍보맨은 모두가 업무로 인정받지 못해

26일 서울 광화문의 한 빌딩에서 직장인들이 야근을 하고 있다./송은석기자26일 서울 광화문의 한 빌딩에서 직장인들이 야근을 하고 있다./송은석기자



삼성전자는 지난 5월 재량근무제 도입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실제 적용 부서는 한 곳도 없다. 최대 6개월 내 주당 52시간 근로를 맞추면 시간·장소에 구애 없이 일할 수 있는 제도가 재량근로제다. 그런 만큼 스마트폰 연구부서, TV 등 가전 개발팀 등이 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지만 현실은 달랐다.

삼성은 월간 단위로 주당 근로시간을 맞추는 선택근로제로 대응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재량근로를 하기에는 외부의 시선에 대한 부담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한 임원은 “노조들이 탄력근로제의 단위시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3개월 늘리는 것을 두고도 노동 착취, 임금 감소 등을 명분으로 반대하고 있지 않느냐”며 “정부 주무부처도 재량근로제에 대해 ‘근로 시간을 정확히 따지기 어렵다’는 이유로 시큰둥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전 같으면 회사에서 할 일을 카페나 집에서 하는 동료들이 많다”며 “제도의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부작용이 있으면 숨통을 터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주당 52시간 근로 시행에 따른 계도 기간이 한 달 남짓밖에 안 남았지만 산업계의 혼란은 여전하다. 일률적 적용에 따라 정기보수 등으로 갑자기 일이 몰리는 정유·화학, 납기 경쟁력이 중요한 건설 등의 업종은 물론이고 프로젝트 업무가 많은 연구개발(R&D)·마케팅·기획 등의 부서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일 처리가 다반사다. 한 대기업 직원은 “생산성 위주의 업무 문화 정착, 과도한 야근 근절 등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업종·기업·부서별 온도 차가 커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일은 그대로, 초과근무는 인정 안 돼” 불만 높아=정보기술(IT) 업종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 과장은 주당 52시간 근로가 영 마뜩잖다. 회사가 직원을 착취하는 수단처럼 활용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는 “업무 목표가 떨어지면 어차피 기일 내 일은 끝내야 한다”며 “그런데 법적으로 근로시간을 주당 52시간으로 막아놔 예전 같으면 수당을 받고 하던 일도 이제는 그냥 자원봉사하듯 한다”고 푸념했다. 다른 기업 관계자도 “근로 시간을 맞추는 것이 부서장 평가 등에 반영된다”며 “이러다 보니 일한 시간까지 억지로 꿰맞추듯 휴게 시간으로 잡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계도 기간이 끝나는 내년부터 어떻게 될지 걱정스럽다”며 “노사가 암묵적으로 탈법과 편법을 자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면 상당수 기업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유사들은 2~3년에 1번꼴로 돌아오는 정기보수 기간에 일손이 모자란다. 이때는 주당 근무 시간이 70~80시간에 달한다. 적어도 2개월 이상 과부하가 걸리는 구조다. 회사 입장에서는 고작 2~3개월 때문에 인원을 충원하기도 애매하다. 평상시 유휴 인력이 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최소 인원으로 무리하게 근무를 강행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도 천차만별”이라며 “경영상태가 양호하고 노조가 센 업체들은 큰 틀에서 연봉에 큰 변화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은 눈칫밥 먹듯 일은 하면서 손에 쥐는 월급은 주는 사례도 발생할 것”이라고 전했다.


부서별 위화감도 감지된다. 대관·영업·홍보 등의 부서는 저녁 약속이 잦지만 업무로 모두 인정받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IT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요즘 일부 부서는 금요일 오후만 되면 담당자와 전화 통화도 힘들다”며 “우리는 바쁜데 어떤 부서들은 파장 분위기니 기분이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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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부담에 휴가 보상, 상여금의 기본급화, 고용도 꺼려=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는 근로시간 단축 시행 이후 상여금을 기본급에 산입했다. 기본급의 700%를 상여금으로 지급하고 있는데 최근 인건비 부담이 높아지면서 이 중 500~600%를 기본급에 포함해 인건비 부담을 상쇄시켰다. 이를 통해 올해 임금은 동결했다는 게 A사의 설명. 이 회사 관계자는 “제조업체들이 상여금을 기본급화하면서 인건비 부담을 줄이는 추세”라며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해 3조 2교대나 3조 3교대로 전환할 경우 비용 부담이 급격히 높아져 이처럼 상여금을 기본급에 산입하는 등의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업무량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휴가 보상도 달갑지 않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인건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꼼수를 쓰는 것이나 같다는 게 이들의 항변이다. 게임 업계의 한 실무자는 “매달 받던 몇 십만원의 초과 근로 수당이나 야근 수당을 안 주는 대신 휴가를 쓰게 한다”며 “그런데 업무가 밀린 상태에서 제대로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보니 원하지도 않는 휴가를 떠안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아예 직원 채용을 꺼리는 곳도 있다. 한 산업기계 업체 사장은 “현재 직원 수가 290여명으로 신참 직원이 필요하다”면서도 “300인이 넘으면 곧바로 주당 52시간 근로를 받아들여야 해 인원 충원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상훈·심우일기자 shlee@sedaily.com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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