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당국, 시장개입 度 넘었다] 보험료·수수료 이어 대출금리까지...브레이크 없는 '정부 통제'

코픽스에 요구불예금 넣어 금리 0.25%P 인하 추진도

‘서민부담 완화’ 명목으로 합리적 시스템 대신 규제 늘어

경쟁 사라지며 시장 왜곡·투자 위축 부작용 우려 커져




금융당국의 금리 개입과 가격 통제가 도를 넘었다. 인위적으로 대출금리를 떨어뜨리기 위해 주택담보대출 부수거래를 3건 이상 의무적으로 적용하도록 하고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구성요소에 금리 0.1% 수준인 요구불예금을 포함할 방침이다. 이는 경쟁을 통해 금리를 낮추는 시장 논리에 반하는 것으로 개별 은행들의 상품과 서비스가 획일화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특히 서민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관치와 정치가 통제하는 금융이 되면서 합리적 시스템을 찾아볼 수 없고 규제만 늘어나 양질의 금융 일자리가 줄어드는 역효과가 초래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담대를 신청할 때 금리혜택을 볼 수 있는 부수거래는 급여이체, 관리비 자동이체, 모바일뱅킹 이체 등 보통 은행마다 10여 가지에 이른다. 대부분의 혜택을 충족할 경우 1%포인트 내외까지 금리를 낮출 수 있으며 선택하는 순간 즉시 적용된다. 현재 고객들은 인터넷으로 개별 은행 금리를 비교한 뒤 이러한 우대금리를 3건 이상 적용받고 있지만 정부는 일률적으로 대출금리를 낮춰야 한다는 전제하에 3건 이상 의무화를 밀어붙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고객으로부터 신청이라도 받아야지 신청도 받지 않고 다 해주라는 것은 너무하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이러한 결정구조가 반복되면서 시장 메커니즘에 따른 은행 간 차별화 경쟁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모니터링을 통해 다른 은행과 금리·수수료 등을 비슷하게 유지하려고만 한다는 얘기다. 이미 KB국민은행·KEB하나은행·NH농협은행은 올해 들어 심리적 마지노선인 5%를 넘지 않기 위해 정부 눈치를 보며 가산금리를 낮췄고 신한은행의 경우 가산금리를 올리려다가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

특히 내년부터 이 같은 내용의 대출금리 산정체계 개편안이 적용되면 기존 차주들은 최소 0.25%포인트 이상 금리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미 금융당국의 방침에 따라 코픽스에 적용되는 요구불예금 비율을 정했고 0.25%포인트가량 낮아지는 수준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코픽스는 국내 8개 시중은행이 조달한 정기예금·금융채 등 8개 수신상품의 가중평균금리로 변동금리 주담대의 기준이 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 중 코픽스 연동 대출은 41.8%로 가장 비중이 높다. 코픽스를 낮추면 자연스럽게 실제 대출금리도 인하돼 기준금리가 오르더라도 완충효과를 내게 된다.



아울러 은행 변동금리 대출을 중도에 갚으면 내야 하는 중도상환 수수료 인하도 추진되고 있다. 현재 은행들은 약 1.5%(담보), 0.7%(신용)의 중도상환 수수료를 적용하는데 내년부터는 이 역시 낮추도록 할 계획이다.


조달비용 등 원가에 대한 고려 없이 이렇게 일률적으로 금리를 낮추면 금융사의 수익성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1조4,000억원 규모의 수수료 인하를 통해 자영업을 지원하겠다는 카드 수수료 개편안과 궤를 같이한다. 당초 인하 여력을 1조원으로 잡았다가 마트협회를 지원한다면서 4,000억원을 늘렸다. 이 과정에서 협상은 없었고 일방적인 통보뿐이었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앉은 자리에서 이익을 내놓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인허가 산업이고 어느 정도 정부의 보호를 받는다 해도 이익을 많이 내면 그만큼 사회에 기여를 많이 하도록 유도해야지 상장사의 이익을 줄이는 방향으로 추진하면 외국인 투자가들은 모두 떠날 것”이라며 “역대 정부 중 최악”이라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통신사들은 정부의 통신요금 인하 정책으로 수익성이 지속 하락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위해 20조원가량을 쏟아부어야 하지만 투자 재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부의 통신요금 인하 정책이 이통사들의 실적 하락을 초래했고 결국 미래 먹거리에 대한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국내 이통 3사는 올해 3·4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3조1,268억원, 9,017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매출은 1.5%, 영업이익은 8.3% 줄어든 수치다. 특히 SK텔레콤은 올해 3·4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22.5% 급감하는 등 심각한 수익성 악화에 직면했다. 정부가 무리하게 통신요금 인하 정책을 폈기 때문인데 그 결과로 미래 먹거리에 대한 투자도 위축됐다. 이통사들은 앞으로 5년간 5G 구축과 관련해 7조5,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4G LTE 당시 8년간 약 20조원을 투자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액수다. 이통사들은 곳간이 비게 되면서 투자도 망설이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유통업계에서도 현 정부 들어 소상공인의 권익을 앞세워 시장논리에 맞지 않게 대형마트 출점 제한이나 복합쇼핑몰에 대한 주말 의무휴업 등이 잇따라 확대되는 등 유례없는 시장개입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보험 가격에 대한 정부의 개입도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사실상 전 국민이 가입하는 실손보험과 자동차보험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국민보험’에 대한 가격 개입은 법적 근거도 없이 구두 압박만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상황이 더 심각하다.

실제로 국내 보험 업계는 손해를 봐가면서 자동차보험·실손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올해 3·4분기 누적 기준 손해보험사들의 자동차보험 적자는 2,104억원에 이른다. 올해 8년 만에 정비요금이 오른데다 건강보험 확대로 2~3인실에 입원하는 환자들이 늘어나 손해율이 최근 90%까지 치솟은 탓이다. 보험 업계는 이에 따라 내년도에 적어도 7~8%의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금융당국에 전달했지만 당국에서는 “업계가 사업비를 줄이면 인상폭을 낮출 수 있다(최종구 금융위원장의 8월 간부회의 발언)”는 경고만 내놓으며 보험료 상승 움직임을 억누르고 있다.

보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동차보험은 11개 회사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펼치는 곳인데 정부는 가격을 통제하려고만 드니 결과적으로 서비스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금융 선진국들은 4차 산업혁명에 자동차보험을 접목해 새로운 상품을 내놓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데 우리는 당장의 적자를 메꾸기에 급급해 장기간 투자는 꿈도 꾸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또 ‘문재인케어’ 실시를 근거로 내년부터 신(新) 실손보험의 보험료를 8.6% 깎으라고 보험 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개입이 필요한 상황도 있겠지만 현재는 시야가 너무 근시안적”이라며 “충분한 영향 분석이 없어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카드 수수료의 경우 카드업 종사자의 임금 하락이나 카드사 주주 배당금 하락, 나아가 소비 위축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황정원·서일범·강동효기자 garden@sedaily.com

황정원·서일범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