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1-1번 출구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공간이 하나 있다. ‘구름 위의 라운지(羅雲地)’로 불리는 공개 공지다. 도심 속 작은 쉼터로 조성됐지만 불과 지난달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잠시라도 머물다가는 이를 찾기는 어려웠다. 쉼터를 찾는 도시민들로 이곳이 북적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초부터다. 쉼터와 맞닿아 있는 부영빌딩 지하 1층에 ‘아크앤북(ARC·N·BOOK)’이라는 ‘서점이 아닌 서점’이 문을 연 날이다.
아크앤북은 공간 플랫폼 기업을 표방하는 OTD코퍼레이션이 선보인 첫 번째 서점 브랜드다. OTD는 일종의 맛집 편집숍인 ‘셀렉다이닝’으로 이름을 알린 스타트업이다. 소매점을 매개로 한 공간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공간혁신이 바로 OTD의 비즈니스 모델. 종로 D타워의 파워플랜트와 신세계 하남스타필드의 마켓로거스, 여의도 SK증권 지하의 디스트릭트Y가 OTD의 작품이다. 당초 이곳은 삼성화재가 직원 교육에만 쓰던 ‘닫힌’ 공간이었다. 이후 부영그룹이 건물을 사들이면서 쓸모없는 공간으로 전락했다. 이를 눈여겨보고 공간을 임대한 게 바로 손창현 OTD대표다.
11일 서울경제 시그널과 만난 손 대표는 “유럽이나 미국 도시의 카페에서는 사람들이 쉬고 있지만 한국은 카페마저도 공부하는 도서관이 돼 버렸다. 그런데 종로서적에 갔더니 오히려 서점에서는 잠을 깨우러 다니는 직원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멍 때리는 것도 못하는 한국 사람이 그나마 서점에서는 편히 쉴 수 있다는 것에 착안한 게 아크앤북의 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아크앤북이 일반인들이 떠올리는 서점과 모습이 판이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은 베스트셀러 매대가 아니다. 일반 책으로 만들어진 아치 형태의 조형물. 판매하는 책들도 각각 주제별로, 관련 상품과 함께 큐레이션 돼 있다. 매대와 매대 사이엔 초밥, 피자, 태국 음식, 프렌치 레스토랑 등 맛집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 최초의 빵집으로 유명한 태극당의 분점 1호도 이곳에 있다. 심지어 책을 보면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생활용품으로 유명한 ‘띵굴스토어’도 만날 수 있다.
손 대표는 “서점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책을 사기 위한 기능에만 국한하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체류할 수 있는 형태의 공간으로 바꾼 게 아크앤북”이라며 “노들섬도 서점을 매개로 해서 그림과 팝업 시장 등이 어우러지는 복합문화공간이 되도록 서울시와 협업 중”이라고 말했다.
OTD는 F&B와 서점을 중심으로 향후 도시재생 사업까지 영역을 넓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크앤북을 비롯해 다양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로까지 발길을 넓힌 OTD의 올해 예상 매출액은 1,200억원에 달한다. 2014년 창업 당시 매출액 30억과 비교하면 불과 5년새 40배나 덩치를 키운 셈이다.
OTD의 혁신은 단순히 오프라인의 공간에만 멈추지 않는다. 맛집 편집숍을 온라인 서비스와 접목한 이른바 ‘셀렉다이닝 2.0’도 준비 중이다. 손 대표는 “맛집이 모여 있는 게 기존 셀렉다이닝이라면 맛집에서 손님이 몰리지 않는 시간에 생산한 음식을 배달을 통해 그대로 집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셀렉다이닝 2.0이다”며 “OTD의 맛집의 배달과 이커머스 기능까지 집어넣은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김상훈·박시진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