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시의 신축 펜션에서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 10명이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됐다. 이 중 3명은 숨졌다. 수사 중인 경찰은 펜션의 보일러 배관이 어긋나 있었다고 밝혀 이로 인한 일산화탄소(CO) 중독이 사고 원인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일산화탄소 경보기가 펜션에 설치되지 않았던데다 강릉시에 고압 산소 치료 장비가 갖춰진 병원이 한 곳밖에 없는 탓에 학생들이 강릉에서 원주의 병원까지 향했던 것으로 알려져 또다시 인재(人災)가 발생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일산화탄소 사고사 추정…보일러 배관 결함에 무게=소방청과 강원지방경찰청에 따르면 18일 오후1시12분 강릉시 저동의 한 펜션에서 발견된 피해자 10명은 의식불명 상태로 모두 입에 거품을 문 채 1·2층 방안 곳곳에 쓰러져 있었다. 소방 관계자는 “사건 현장에서 CO 농도가 일반적인 정상수치인 20ppm을 크게 웃도는 155ppm으로 높게 측정됐다”고 밝혔으며 환자 총 5명을 치료하고 있는 강릉아산병원의 강희동 전문의도 “가스 누출로 추정된다”고 밝혀 CO 중독이 유력한 사고 원인이다. 강 전문의는 “처음 병원에 도착할 때보다 환자 상태는 경미하게 나아져 의식이 호전될 가능성이 있지만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 학생들은 지난 17일 2박 3일 일정으로 이 펜션을 찾았다. 학생들은 전날 저녁에는 고기를 구워먹었으며 사고 당일 오전3시까지만 해도 위층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고 펜션 관계자가 증언해 새벽까지는 모두 건강한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관계자는 “가스보일러 배관과 배기구를 연결하는 연통이 서로 어긋나 있는 상태였다”며 “배기가스가 외부로 배출되지 않아 사고로 이어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으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혀 인재 가능성이 제기된다. 만약 CO 중독으로 인한 사고사로 결론이 날 경우 펜션 관계자들의 안전 관리 문제가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사고 건물은 2014년 사용승인을 받아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되다 올해 7월부터 펜션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스보일러의 배기가스 연통이 분리되면 보일러에서 발생하는 CO가 실내로 유입돼 중독 사고가 흔히 발생한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펜션 업주와 신고자 등을 상대로 자세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사고가 발생한 펜션에는 CO를 검출할 수 있는 가스 누출 경보기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보음을 들었더라면 학생들이 피신했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2012년 화재경보기 설치가 모든 주택에 의무화된 반면 CO 경보기 설치 의무 조항은 없다.
◇고압 산소 치료 장비 태부족…‘골든타임’ 허비=이번 사고 일부 피해자들의 경우 CO 중독에도 불구하고 강릉 시내에 고압 산소 치료 장비를 활용한 즉각적인 응급 장비가 없는 탓에 치료를 위한 ‘골든타임’이 허비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색무취의 CO는 자체로는 독성이 없지만 적혈구와 결합해 산소 보급을 막아 질식을 유도한다. 결국 소방 구급차 및 일반병원의 산소 장치로는 대기압과 똑같은 기압으로 산소를 보급할 수밖에 없어 환자의 생명을 보장하기 어려운 탓에 2~3기압으로 산소를 공급하는 처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강릉시 내에서 확보된 고압 산소 치료시설은 강릉아산병원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식불명인 환자 6명은 아산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강릉동인병원으로 이송된 환자 2명은 고압 산소 치료 장비가 갖춰지지 않아 응급처치만 마친 채 차로 1시간 40분 거리에 있는 원주 세브란스병원으로 헬기를 통해 이송될 수밖에 없었다. 고압 산소 치료시설이 태부족한 것은 유지 비용에 비해 수익이 적기 때문이다. 최근 대형병원들도 연탄 난방시설이 줄고 있어 환자가 적어지는 탓에 이 장비를 굳이 갖추지 않고 있다. 수익성에 국민의 생명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셈이다. 나백주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관련 연구가 보완돼야 하겠지만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 의료재라면 지자체별로 하나씩은 갖추도록 하는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변재현기자 강릉=오지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