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를 이용해 비서에게 성폭력을 한 혐의로 항소심 법정에 나온 안희정(54) 전 충남도지사는 꼭 필요한 말 외에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1심에서 안 전 지사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안 전 지사는 21일 오전 서울고법 형사12부(홍동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강제추행 등 혐의에 관한 항소심 첫 공판에 섰다. 법원 청사에 들어설 때 취재진의 질문에 “죄송합니다”라며 답변을 사양한 그는 법정에서도 조심스러웠다. 그는 자리에 앉아서도 변호인들과 눈인사만 나누고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재판장이 피고인의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인정신문 때 안 전 지사는 직업을 묻는 말에 “무직입니다”라고 답하며 실제 주거지가 “양평 친구 집”이라고 밝혔다. 이후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안 전 지사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날 검찰은 항소 이유로 “이 사건의 본질은 권력형 성폭력인데, 원심은 이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원심은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의 성립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했고, 물적 증거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이유 없이 배척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성폭력 재판으로 법령에 따라 엄정히 진행돼야 하는데 절차상 의무를 다하지 않아 심리를 그르쳤다”며 “엄정한 사실인정과 법리 판단으로 실체를 규명하고 상응하는 선고를 해 달라”고 밝혔다.
이에 안 전 지사 측 변호인은 “원심은 도지사와 수행비서의 지위라 수직적·권력적 관계가 존재했을지는 몰라도 간음과 추행의 수단이 된 것은 아니라는 것으로 매우 타당한 판단”이라며 “형법상의 구성요건에 대해 적절히 판단했고, 피해자의 주관적 의사만으로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판단했다”고 반박했다. 변호인은 “권력형 성범죄라고 규정하고 비난 가능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또 이 사건의 사회적 파장이 크다고 해서 범죄의 성립을 따질 때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는지를 엄격히 판단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성범죄에서 지위 고하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합의하고 관계했다고 추정할 사정이 증거로 인정된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재판부는 검찰과 변호인의 모두진술까지 마친 뒤 재판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비공개 재판에서는 피해자인 옛 수행비서 김지은 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된다. 이날 첫 공판을 시작으로 재판부는 총 네 차례 공판을 진행해 내년 2월 1일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안 전 지사는 지난해 7월 29일부터 올해 2월 25일까지 김지은씨에게 10차례에 걸쳐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과 강제추행 등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에게 ‘위력’이라 할 만한 지위와 권세는 있었으나 이를 실제로 행사해 김씨의 자유의사를 억압했다고 볼 증거는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박원희 인턴기자 whatamov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