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수익률이 한 달 만에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16조원을 훌쩍 넘는 규모의 국민 노후자금이 증발했다. 전체 자산 중 유일하게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국내 증시에서 날아간 돈만 15조원이었다. 보험료율을 올리는 방법으로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국민연금 제도 개편안이 문재인 대통령의 손에 들어가 있지만 기금운용 수익률을 높이는 대책도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 이후 인력이탈이 잇따르면서 외부충원 등으로 조직정비에 나섰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회복되는가 싶던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을 다시 ‘마이너스의 늪’으로 끌어내린 것은 국내 주식시장이었다. 28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발표한 지난 10월 말 기준 기금운용 수익률에 따르면 국내 증시 수익률은 -16.57%였다. 국내 증시 수익률의 추락으로 9월 말 기준 653조6,290억원이었던 전체 연기금 잔액도 637조36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국내 증시 자산 규모도 같은 기간 123조9,350억원에서 108조903억원으로 줄었다. 쉽게 말해 한 달 만에 전체 기금에서 16조5,930억원, 국내 증시에서만 15조320억원이 사라진 셈이다.
그나마 채권과 대체투자가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전체 수익률 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국내 증시를 제외한 자산의 수익률은 △해외주식 1.64% △국내채권 3.47% △해외채권 4.53% △대체투자 7.57% △단기자금 2.32% 등이었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수익률 추락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나마 수익을 올리던 해외 증시에서 11월 이후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9월 말까지 8.17%에 달했던 해외 증시의 수익률은 1.64%로 급감했다. 125조3,760억원까지 덩치를 키웠던 자산 규모도 119조4,400억원으로 줄었다. 25일 다우지수가 2.9% 하락하고 일본 닛케이지수가 5% 하락한 ‘블랙 크리스마스’ 등의 상황이 성적표에 반영되면 수익률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이 수익률 제고를 위한 국민연금 운용체계 개편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장 올해 국민연금의 규모가 줄어드는 것 뿐만 아니라 지금 상황대로라면 당분간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신성환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가 높아지는 추세인데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오름세를 보이던 글로벌 증시가 하락세로 돌아섰다”며 “금융시장이 불확실한 만큼 유연하게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전술적 자산배분’이 필요하지만 지금의 운영체계는 목표초과 수익률 달성에만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국내 증시에 배분될 계획인 자산 규모가 20%라고 가정하자. 올해처럼 국내 증시가 좋지 않을 경우 탄력적으로 자산배분 비중을 바꿀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는 게 신 교수의 설명이다.
대체투자 비중을 빠르게 끌어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꾸준히 나온다.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이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해외 대체투자 비중을 20% 중반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을 잡아놓았지만 지금도 국민연금의 대체투자 비중은 10%가량에 불과하다”며 “운용본부의 독립과 대체투자 확대 등 바꿔야 할 문제가 많지만 이번 제도 개편안에서 수익률 제고 문제는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꼬집었다. 전 전 이사장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국민연금공단을 이끌었다. 이와 관련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한 관계자는 “연금은 장기투자자로서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고 있다. 장기적 성과 제고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