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재생에너지 기술이 발전하기 전까지 안정적 전력 수급을 위해 합리적인 수준으로 원전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치러진 대만 국민투표에서 차이잉원 정권의 탈원전정책 폐기를 이끌어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예쭝광(葉宗洸·사진) 대만 칭화대 원자과학원 교수는 1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취재진과 만나 한국 정부에 이같이 조언했다. 한국원자력학회가 주최한 세미나 참석차 방한한 그는 “한국이 탈원전정책을 유지하면 전력 불안정성이 가중되는데다 전기요금 인상과 대기오염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며 “원전은 그린에너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옵션”이라고 말했다. 예 교수의 이 같은 주장은 대만 국민투표 당시 슬로건으로 사용됐던 ‘이핵양록(以核養綠·Go Green with Nuclear)’과 일맥상통한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에너지로 환경(녹색)을 보호하자는 의미다.
예 교수는 탈원전 여론이 강했던 대만 국민들이 원전 유지로 돌아선 결정적인 배경으로 탈원전 이후 이어진 전력부족 문제를 꼽았다. 그는 “대만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지난 2017년 원전을 3기만 가동하자 병원에 전력공급이 중단되는 블랙아웃 사태까지 발생했다”며 “한국은 아직 대만 같은 대규모 블랙아웃 경험이 없지만 정부의 기조가 이어진다면 한국도 같은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예 교수는 특히 원전 없이 액화천연가스(LNG)와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전력부족이라는 현실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은 여름 오후에만 제대로 가동돼 기저발전으로는 활용할 수 없고, LNG도 대만이나 한국이나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며 “새로운 기술이 발전하기 전까지 원전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이 전세계적 트렌드가 맞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오히려 전세계적인 트렌드는 원전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이웃국가로부터 전기를 수입할 수 있는 독일만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예 교수는 지난 2012년부터 대만 과학자들과 함께 ‘원전 유언비어 종결자(Nuclear Myth Busters)’라는 단체를 결성해 원전과 관련된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는 활동을 했다. 특히 차이잉원 민주진보당(민진당) 주석이 지난 2016년1월 탈원전 정책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총통에 당선된 이후에는 ‘탈원전 폐기’ 국민투표를 성사시키기 위한 활동에 매진했다. 예 교수는 “국민투표를 시행하기까지 세 단계를 거쳐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며 “첫 번째 단계에서는 국민투표 청원을 위해 1,879건 이상, 두 번째 국민투표를 지지하는 단계에서는 28만명의 서명을 받았고, 결국 마지막 국민투표에서 결국 전체 유권자 1,083만명 중 586만명이 탈원전 폐기에 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활동을 벌인 이유에 대해서는 “대만 정부가 탈원전을 추진하는 것이 국민적 합의에 근거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실제 국민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국제적으로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도 이날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탄소 제약 사회에서 원자력의 미래’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연사인 자코포 부온지오르노 MIT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한국이 원자력을 폐지한다면 수출 기회를 잃고 세계 원자력 산업에도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한국에 왔더니) 미세먼지 경고 문자가 휴대폰으로 오고 있고 목이 아픈거 같다”며 “사람들이 이미 건강상에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미세먼지·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원자력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최적의 솔루션”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