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양승태 前 대법원장 구속] 진보·노동계 '재심청구' 불보듯... 빗나간 예상에 法 '사분오열'

노조·전교조 사건 등 논란 예고

고참법관 vs 소장파 반응 갈려

김명수 "참담" 허리 숙여 사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24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민중당 관계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의왕=연합뉴스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24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민중당 관계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의왕=연합뉴스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 혐의가 소명됐고 사안이 중대하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

24일 법조계에서는 검찰 출신 명재권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밝힌 양 전 대법원장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전직 사법부 수장을 구속했다는 것은 법원 스스로 재판거래 등과 관련한 조직적 범죄를 자행했음을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명 부장판사는 상당수 혐의가 소명됐다고 판단한 것은 물론 증거인멸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재판거래 범죄 가능성을 중간 단계에서 자체적으로 인정한 만큼 대표 피해자로 꼽히는 옛 통합진보당 측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민주노총 등이 본격적으로 구제 요청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법원 내부에서는 보수성향이 강한 고참급 판사들과 새 주류세력으로 발돋움한 진보성향 판사들 사이에 급격한 분열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통진당·전교조·민노총 등 역공 우려=양승태 사법부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부와 논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은 총 15건 이상에 이른다. 이 가운데 쌍용차 정리해고, KTX 승무원 사건 등은 의혹이 불거진 직후 문재인 대통령 등 정부의 적극적 중재로 복직의 성과를 이뤄냈다. 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국정원 댓글 혐의’로 결국 징역 4년을 확정받았고 대법원에 5년 이상 계류됐던 일제 강제징용 사건도 지난해 10월 피해자들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이제 남은 사건은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 사건, 법외노조 등 전교조 관련 사건, 통상임금·철도노조·콜텍 등 노조 관련 사건, 키코 사건 등으로 좁혀진다. 특히 내란선동죄로 대법원에서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이 전 의원의 경우 지난해 12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석방대회’에 무려 2만명의 인파가 몰리는 등 사면 요구가 점점 더 커지는 상황이다.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을 계기로 특별사면 압박이 더 거세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전교조의 경우 빨치산 추모제 참석 사건, 시국선언 사건,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사건 등 여러 건이 의혹 대상에 올라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 사건인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 사건 본안이 여전히 대법원에 계류 중이라는 점에서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이 상고심 판단에 직간접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콜텍·철도노조 등 노동 사건은 대부분 민노총과 관련돼 있어 이들이 목소리를 대변할 것으로 보인다. 민노총은 지난 23일에도 법원 앞에서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을 촉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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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서는 이들 대부분이 일단 재심 청구를 검토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청구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등 법률적 한계에 부딪히더라도 KTX 승무원, 쌍용차 사례처럼 정부의 도움을 기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당 사건들을 재심으로 구제받을 수 있도록 발의한 피해구제 특별법 통과 여부도 변수로 꼽힌다.

◇빗나간 기각 예상에 법원은 ‘사분오열’=재판거래 피해자들과 달리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 구속 후 그야말로 혼란에 빠진 모양새다. 애초 법관들 사이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의혹 문건을 직접 작성·지시한 실무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양 전 대법원장 간 연결고리로 지목된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 대한 영장이 지난해 12월 나란히 기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서만 영장이 발부되자 고참급 법관들을 중심으로 “법리가 아닌 정치적 판단으로 영장을 발부했다”며 크게 반발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비판 여론과 정치권의 ‘특별재판부’ 도입 카드에 결국 법원까지 휘둘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을 계기로 다음달 정기인사를 앞둔 엘리트 법관들의 줄사표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실제로 올 초 최인석 전 울산지방법원장이 사표를 낸 것을 시작으로 양승태 사법부가 만든 서울회생법원의 초대 수장 이경춘 법원장과 성낙송 사법연수원장, 조해현 대전고등법원장, 여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 이언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등이 잇따라 사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상당수는 검찰 손을 빌어 내홍을 키운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불만 때문에 법원을 떠나려 한다는 게 법원 안팎의 전언이다.

이에 반해 소장파 판사들과 법원 외부 인사들은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은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류영재 춘천지법 판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영장 재판을 법과 원칙이 아닌 여론을 의식한 재판이었다는 식으로 폄훼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면 전직 대법원장이라도 구속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평가했으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양승태를 구속해 진상규명에 한발 더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 국민 열망이 현실화된 것”이라고 논평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는 “양승태의 구속은 사필귀정”이라고 주장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출근길에서 취재진을 만나 “참으로 참담하고 부끄럽다”며 두 번이나 국민 앞에 허리 숙여 사과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4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김명수 대법원장이 24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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