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위치한 선박기계 업체 B사의 김모 사장은 요즘 일감부족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최근 나오고 있는 조선업종 회복 뉴스는 딴 세상 얘기같이 느껴진다.
김 사장은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로 대형조선사가 살아난다고 하는데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며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만 해도 가스를 냉각시켜 액체로 만들어 보관하는 일종의 ‘빈 통’이라 여기에 들어가는 기자재 자체가 별로 없다”고 푸념했다. 그는 “협력업체 일감은 컨테이너선이 100이라면 LNG선이나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등의 유조선은 20~30%밖에 안 된다”며 “낙수효과가 없다 보니 일대 조선부품 업체가 다 고사 위기”라고 전했다. 7년 만에 중국을 따돌리고 지난해 수주 1위에 오른 한국 조선업. LNG선 수주 독주 등 중흥기를 맞았지만 부품 등 기자재 업체의 절대다수는 아직도 벌크선 등 저부가가치선만 쳐다보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조선 생태계에서는 온기조차 느끼기 어렵다. 지난해 연간 생산량이 400만대를 겨우 넘기며 세계 7위로 내려앉은 자동차 생태계도 전속거래, 영업악화에 따른 연구개발(R&D) 소홀 등으로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이미 10년 뒤인 오는 2030년 신차 판매 중 전기차 비중이 크게는 30~40%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한 자동차 업계 임원은 “부품 업체의 경영난은 부품경쟁력 하락, 더 나아가 원청업체의 완성품 경쟁력 하락으로 직결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책 변화는 고령화된 숙련공 해고 등으로 이어져 인력 공급망도 무너지고 있다. 조선산업은 장기침체로 취업이 어렵고 근무환경이 열악하다는 인식에 조선학과는 외면받고 있다. 지난 3년간 서울대 조선해양학과 정원의 4분의 1이 전과를 했고 지역균형선발은 미달 됐다. 탈원전과 수출 부진 등으로 향후 10년간 최대 1만명 가까이 전문인력이 줄 것이란 보고서(딜로이트)가 나온 원자력 산업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원청업체의 부진, 통상전쟁에 따른 관세 부과, 고비용 구조를 유인하는 각종 정책으로 부품업체들이 무너지고 있다”며 “산업 생태계가 망가지면 대기업의 낙수효과를 받을 그릇 자체가 사라지는 만큼 산업 허리를 탄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훈·박한신기자 s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