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받은 농지는 상속인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처분하지 않고 계속 소유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이 처음으로 농사를 짓지 않아도 농지를 계속해 소유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결을 내린 것이어서 사회적 논란이 예상된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신 모씨가 부산시 강서구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농지처분의무통지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고 승소 취지로 부산고법에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신씨는 부산 강서구에 있는 농지 2,158㎡를 상속받은 뒤 구청이 ‘농지법 10조1항을 위반해 농지를 공장용지로 사용하고 있다’며 농지처분의무를 통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농지법에 따르면 소유자가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경우엔 농지를 1년 이내에 처분해야 한다. 다만 농지법 6조와 7조는 농지를 상속받은 경우엔 농사를 직접 짓지 않더라도 1만㎡ 이하의 농지를 소유하도록 허용한다.
재판에서는 농지법 6·7조에 따라 상속받은 농지를 소유할 때, 실제 이 땅에서 농사를 짓지 않았다면 농지법 10조에 따라 1년 이내에 땅을 처분해야 하는지가 쟁점이었다. 이에 대해 1·2심은 농지를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면 처분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1·2심은 “상속으로 적법하게 취득한 1만㎡ 이하의 농지라도 직접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거나 무단으로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 농지처분의무를 부담한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신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상속으로 취득한 1만㎡ 이하의 공지에 대해서는 농사를 직접 짓지 않으면 농지를 1년 이내에 처분해야 한다는 농지법 10조1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일정한 면적 범위 내에서 상속한 비자경 농지의 소유를 인정하는 근거는 재산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라며 “상속 농지를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는다고 해 소유 상한 범위 내의 농지를 소유할 근거가 사라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농지법의 취지가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도 1만㎡ 이하의 농지를 상속받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에 상속 후 농사를 짓지 않았어도 농지를 처분할 의무가 없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농지 상속이 계속되면 경자유전 원칙에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그 문제는 재산권 보장과 경자유전의 원칙이 조화되도록 입법적으로 해결할 문제”라며 법원의 고려 사항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결을 놓고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가져야 한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배제한 채 법을 형식적으로만 해석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농지를 상속받아 일단 소유하게 됐더라도 계속해 소유하기 위해서는 직접 농사를 짓게 하는 것이 경자유전 원칙에 합당하다”며 “대법원이 재산권 보장에만 치중해 농지의 소유 제한성을 외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원희 인턴기자 whatamov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