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MB보석’ 정준영 부장판사 “자택서 과거 일 찬찬히 회고해 달라”

뇌물·횡령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항소심에서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으로 풀려나 서울 동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연합뉴스뇌물·횡령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6일 항소심에서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으로 풀려나 서울 동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항소심 재판부가 6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석을 허가하면서 보석조건 외에 별도의 당부사항을 남겨 눈길을 끈다.

재판부가 보석에 앞서 피고인은 물론 검찰에까지 추가 당부사항을 전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보석 결정을 둘러싼 형평성 논란이 일 것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는 이날 이 전 대통령의 보석허가를 결정하고 보석조건을 설명한 뒤 “전직 대통령을 재판한다는 역사적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지 않고 공정하고 엄정하게 재판을 진행하고자 한다”면서 이 전 대통령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을 했다.

정 부장판사는 “보석은 무죄 석방이 아니라 엄격한 보석조건을 지킬 것을 조건으로 구치소에서 석방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구속영장의 효력은 그대로 유지되는 만큼 추후 보석조건 위반을 이유로 보석이 취소돼 재구금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해달라”고 말했다.

정 부장판사는 “건강 문제를 이유로 하는 보석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도 “자택에서 매일 1시간 이상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 건강을 유지하고 성실하게 재판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건강 문제가 석방돼 치료받아야 할 만큼 위급하지는 않다고 판단했지만, 이 전 대통령 측이 건강악화를 호소하고 있는 만큼 스스로 건강을 잘 챙겨 재판 진행에 문제가 없게 해달라는 취지로 풀이된다.

정 부장판사는 또 “재판 과정에서 느꼈겠지만 형사재판은 현재의 피고인(이 전 대통령)이 과거의 피고인과 대화를 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며 “자택에 가서 기소된 범죄사실 하나하나를 읽어보고 과거 피고인이 한 일을 찬찬히 회고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는 사건의 실체 규명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억을 되살려 달라는 취지로 이해된다. 일각에서는 무조건 혐의를 부인할 게 아니라 반성할 부분이 있는지 살펴 달라는 뜻이 아니겠냐는 해석도 나온다.


재판부는 검찰을 ‘공익의 대변자’로 칭하면서 당부의 말을 함께 남겼다.



정 부장판사는 “법원이 부과한 보석조건을 피고인이 잘 준수하고 있는지 검찰에서도 잘 감시하고, 피고인이 보석조건을 위반할 경우 보석허가 취소청구를 하는 등 적절하게 대응해서 보석 제도가 엄격하고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말했다.

또 “검사는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을 기소한 반대 당사자이지만, 동시에 공익의 대표자이기도 하다”며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 핵심 증인의 소재를 파악해 증인신문에 출석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을 하기도 했다.

재판부가 이 전 대통령은 물론 검찰에 별도의 당부 발언을 한 것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이번 보석 결정을 둘러싸고 형평성 논란이 일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검찰 측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황제보석’ 논란 등으로 보석 제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으므로 엄격하고 공평·타당한 법 적용을 통해 보석 청구가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준영 부장판사는 법원 내에서 손꼽히는 ‘파산·회생’ 전문가로 통한다.

사법연수원 20기인 그는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를 시작으로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부장판사, 특허법원 부장판사, 서울회생법원 수석부장판사 등을 역임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1996년 국내 첫 개인 파산 사건의 주심을 맡았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에는 한보·삼미 등의 법정관리 절차를 맡았다. 2017년에는 한때 국내 1위, 세계 7위 선사였던 한진해운에 최종 파산 선고를 내리기도 했다.

유동성 위기를 겪는 중소기업에 신속히 자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패스트 트랙’의 도입 과정에서도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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