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늘의 경제소사]美,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

1980년 카터 대통령, 공식 선언




‘미국은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가지 않겠습니다.’ 지난 1980년 3월21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연설의 골자다. 올림픽을 준비하던 대표팀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160여명을 백악관에 초청한 자리에서 카터 대통령은 의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들며 ‘하계 올림픽 보이콧’을 확정했다. 카터는 신년 초부터 경고 의사를 밝혔다. 친소 정권을 반군에게서 지킨다며 1979년 성탄 전야에 아프가니스탄을 전격 침공한 소련군이 빌미를 줬다. 철수하지 않으면 올림픽 불참도 불사한다는 카터의 으름장이 현실화한 것이다.


카터가 왜 평소와 다른 강공책으로 일관했는지는 아직도 논란이 분분하다. 재선을 앞두고 우유부단하다는 인상을 지우려는 기회로 활용했다는 해석이 우세한 편이다. 소련군의 침공 6개월 전부터 미국 정보기관이 반군들과 침공에 대비했다는 전직 미 국무장관의 증언도 나왔다. 결국 미국과 서방진영의 불참으로 모스크바올림픽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147개 회원국 가운데 80개국만 참가하는 반쪽 대회에 그쳤다. 뒤이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에서는 소련이 보복에 나섰다. 선수단의 안전보장 문제로 설전을 벌이더니 소련과 동구권 15개국이 LA올림픽에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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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끝물에서 올림픽까지 번진 동서 갈등이 봉합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서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두 가지에 공을 들였다. ‘군 출신 대통령이 통치해온 친미 독재국가’라는 인식 지우기와 동구권의 참가 유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1987년 6월 항쟁에서 전두환 정권은 ‘1년밖에 남지 않은 올림픽을 망칠 수도 있다’는 충고에 따라 무력 진압을 포기했다. 성공적으로 치러진 서울올림픽은 북한의 추락도 앞당겼다. 서울올림픽보다 규모를 크게 치른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위한 대규모 공사와 무리한 자금 집행의 후유증으로 북한 경제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올림픽은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지 2017년 평창동계올림픽도 남북 대화와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내일이라도 터질 것 같던 전쟁 위협이 엷어졌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아프간 사태와 미국의 보이콧으로 시작된 올림픽의 40년 정치경제사에서 두 곳만큼은 변하지 않는 불변의 영역이다. 한반도와 아프간이 그렇다. 지구촌 전체에서 한반도에만 냉전이 노망을 부린다. 침략자 소련과 싸웠던 이슬람 전사들의 오늘날의 상대는 미국이다. 올림픽 찬가 뒤에 어린 냉전의 그늘과 약소국의 설움에 아쉽고 아프다./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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