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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科技 골든타임 놓치면 하청국가 전락] 美·獨 자율 보장하는데 韓은 '하향식 관리'…창의적 연구 못해

<4>연구자가 마음껏 뛰게 하라

선진국은 독창성 중시…단시일내 성과 없어도 믿고 기다려

韓, 아이디어보다 논문·특허 등 정량적 잣대로 연구자 평가

정권 우선순위 연구에 몰려 새로운 분야는 지원받기 힘들어

"철저한 자율성 부여하되 연구부정에 대해 단호히 대처해야"







물리·화학·생물 등 기초과학과 부품소재·기계·자동차 등 기술과 공학이 골고루 발달한 독일. 그 바탕에는 기초과학에만 투자하는 막스플랑크연구재단과 철저히 산업화에 치중하는 프라운호퍼연구재단이 있다. 연구소 예산도 막스플랑크는 연방정부와 16개 주정부가 80% 이상 지원하는 데 비해 프라운호퍼는 70%가량을 기업에서 충당한다.

독일 연구개발(R&D)의 특징은 연구자 선정·평가가 재단의 목적에 맞게 이뤄지고 연구자에게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점이다. 지난 1948년 막스플랑크재단 설립 이후 노벨상 수상자가 18명이나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막스플랑크재단의 전신인 카이저빌헬름재단에서 받은 것까지 합하면 33명에 달한다. 막스 플랑크(1858~1947년)는 양자역학의 창시자로 191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으며 과학계의 교류에 힘썼다.


막스플랑크코리아 소장인 박재훈 포스텍 교수는 “기본철학이 독창적 연구를 해 브레이크스루(돌파구)를 열 만한 뛰어난 연구자를 철저히 검증해 뽑으면 믿고 맡긴다.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막스플랑크재단에는 80개 이상 연구소가 있는데, 연구자가 제안한 연구를 충실히 수행한다면 비록 몇 년간 연구성과가 미흡하더라도 기다려주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DC에서 가까운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HHMI)의 자넬리아팜 리서치캠퍼스도 마찬가지다. 이 재단은 대학과 병원의 의학 연구에 주로 지원하는데 역시 연구자의 자율성에 초점을 맞춘다. 대학·연구기관에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연구자를 추천하면 소수를 뽑아 집중 지원한다. HHMI의 지원을 받은 노벨상 수상자가 29명에 달할 정도다. 이 연구소는 TWA항공 설립자인 하워드 휴스(1905~1976년)가 의학 발전을 위해 1953년 만들었고 무려 148억달러의 기금으로 운용된다.


자넬리아팜에서 박사후과정(포닥) 경험이 있는 박혜윤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는 “미국 정부(NSF와 NIH 등)가 주는 연구비를 받는 것에 비해 연구자가 하고 싶은 연구를 맘껏 하게 하고 비싼 장비를 사도 뭐라고 안 하는 분위기”라고 소개했다. HHMI는 특히 얼마나 도전적이고 창의적으로 연구해 가능성이 있는지를 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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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양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은 “막스플랑크나 HHMI가 여러 정부부처와 산하기관이 연구비를 기획·집행하는 우리 체계와는 다르지만 연구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며 높은 성과를 올리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정부 출연 연구기관과 대학·기업에 주는 R&D 예산이 20조5,000억원에 달하는 가운데 연구자 중심 연구 환경은 아직은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차 산업혁명 융복합 시대를 맞아 R&D로 기초과학 육성과 산업 혁신, 신산업 선도를 이뤄야 하는데 성과가 부족하다. 연구과제 기획·선정·평가 체계가 관 주도로 비효율적이라는 게 과학·기술·공학계의 중론이다.

익명을 원한 서울대의 한 교수는 “생물과 물리를 융합해 연구를 하는데 새로운 분야라 연구비 받기가 너무 힘들었다. 학생연구원 인건비도 거의 못줄 정도였다”고 애로를 호소했다. 연구과제 선정에서 심사위원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인맥이 작동하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익명을 원한 이화여대의 한 자연대 교수는 “정권이 우선순위를 두는 연구 분야에 연구비가 많아 연구자들이 그쪽으로 몰려다닌다”며 “인기 분야는 전문가 아닌 전문가가 판치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고려대 공대의 한 교수는 “정부 연구과제를 받아 연 두 차례 10쪽가량 보고해야 하는데 상당히 형식적이고 행정력 낭비가 만만치 않다”고 털어놓았다.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연구자의 아이디어나 주변 평가보다 어디에 논문을 내 얼마나 인용됐느냐, 특허는 뭐냐 이런 정량평가를 따지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는 R&D로 선도기술을 개발하고 혁신성장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현장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가 R&D 혁신 드라이브를 걸고 있으나 연구자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올해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 예산을 지난해보다 20% 늘린 1조7,000억원, 오는 2022년 2조5,000억원까지 증액하고, 초연결지능화 등 8대 혁신성장 선도사업과 데이터 등 3대 플랫폼에 8조원을 투자하며, 미세먼지·재난 등 삶의 질 연구도 3조원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KAIST 교수 출신인 임대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기혁신본부장은 “R&D 시스템이 ‘관리중심 하향식(top-down)’에 치우쳐 연구에 전념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며 ‘신뢰기반 상향식(bottom-up) 지원’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 5월 서울경제신문이 주최하는 ‘서울포럼’에 참석하는 한스 볼프강 슈피스 막스플랑크 고분자연구소 명예소장은 “막스플랑크와 프라운호퍼가 역할분담을 철저히 한 것처럼 연구자 선정이나 평가기준도 명확한 잣대를 갖고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로버트 싱어 HHMI 자넬리아팜 리서치캠퍼스 시니어펠로 겸 알버트아인슈타인대 교수는 “미국은 연구자에 철저한 자율성을 부여하되 연구부정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한다”고 조언했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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