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통신사 기술 담당 임원들의 낯빛이 사색이 됐습니다.”
지난 10일 서울 모처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SK텔레콤(017670)·KT(030200)·LG유플러스(032640) 등 3대 이통사, 단말기 제조사인 삼성전자(005930) 주요 담당자들이 모여 5세대(5G) 네트워크 관련 긴급 회의를 열었다. 지난 5일 일반을 대상으로 개통을 시작한 지 엿새 만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개통 초반 어느 정도 문제가 생길 줄은 알았지만, 이 만큼일지는 몰랐다”며 엄중했던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11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5G 개통 이후 이용자 불만이 고조되면서 정부와 업계가 뒤늦게 ‘고객 보호’ 조치에 나섰다. 개통 전만 하더라도 초고속·초저지연성 같은 특징을 내세워 ‘신세계’의 도래를 알리는 데만 치중하더니, ‘불완전 판매’ 논란이 끊이지 않자 ‘뒷북’ 대응을 시작한 셈이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지난 10일 긴급 임원회의를 열고 “오랫동안 5G 서비스를 기다려온 고객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며 “5G 커버리지, 속도, 콘텐츠, 고객 서비스 등 모든 영역에서 고객의 목소리를 엄중하게 받아들여 서비스 완성도를 빠르게 높여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5G 시대 개막’이라는 축제 분위기에서 180도 달라진 것이다. 박 사장은 또 “세계 최고 수준의 4세대 이동통신 LTE도 현재와 같은 촘촘한 커버리지를 갖추기까지 수 년이 걸렸다”며 “5G 시대 초기 커버리지와 서비스 제반 사항 안내를 통해 고객이 정확하게 이해하고 합리적 의사 결정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사장 지시로 SK텔레콤은 12일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망 구축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5G 커버리지맵’을 공개하기로 했다.
KT와 LG유플러스 역시 긴급 내부 회의를 열어 네트워크 품질을 점검하고 대응책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KT는 이날 가입자 5만명 돌파 소식과 함께 “5G 네트워크 품질 전사 종합상황실에 120명의 인력을 투입해 품질 고도화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LG유플러스는 KT와 SK텔레콤에 이어 커버리지 맵을 공개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KT와 LG유플러스가 애초 5G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에 상업적 이용 방지를 위한 일일 사용량 제한 조항을 만들었다 각각 지난 9일과 10일 빠르게 삭제한 점도 최근 ‘5G 불통’ 이슈와 무관하지 않다. 일반 이용자는 데이터를 마음껏 써도 이 조항에 적용받지 않는 만큼, 실질적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5G 품질 민원이 거세지며 여론이 불리해지자 논란의 빌미를 없애기 위해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통사들의 고객 몰이 전략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초기 5G 우수성을 강조하고 요금제나 공시지원금 같은 혜택을 알리는데 집중했다면, 이번 주 들어서는 고객이 5G 망의 불완전성을 충분히 인지한 뒤 가입했는지를 꼼꼼히 따지고 있다. 이통사들은 방송통신위원회 권고에 따라 개통 시 ‘판매자에게 5G 서비스 커버리지에 대한 충분한 안내를 받았다. 5G 지역에서도 LTE에 접속될 수 있다는 점을 숙지했다’는 고객 동의 신청을 받도록 했다. 개통 초기만 해도 이 동의서는 여러 개통 서류 중 한 장으로 가볍게 넘겼지만, 이번 주 들어 가장 중요한 절차가 됐다고 현장 판매자들은 전했다. 단말기 유통업체의 한 관계자는 “이통사들은 여전히 대외적으로 5G가 좋다고만 광고하면서 판매점에만 방통위 실사가 나올 수 있으니 제대로 팔라며 겁주고 있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이와 관련 방통위 관계자는 “불완전 판매 요소가 있는지 모니터링 중이며 당장 현장 점검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