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대 초 국내 제과 업계에서는 ‘일본 캐릭터 모시기’ 바람이 불었다. 제품 이름이나 포장지 도안에 넣었다 하면 불티나게 팔려나갔기 때문이다. 당시 ‘짱구는 못 말려(원제 크레용신짱)’ ‘디지몬’ ‘드래곤볼’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 주인공에서 모티브를 따온 제품을 출시하면 단일 제품만으로도 연매출 100억원 달성이 가능했다고 한다. 근래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제과 업계 관계자는 “요즘에는 외산보다 국산 캐릭터를 좀 더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며 “일본 캐릭터 원작들은 선정적이거나 왜색이 강한 경우가 많아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 거부감이 있고 매출 효과가 예전 같지 않다”고 전했다. 실제로 삼양식품은 이달 초 국산 캐릭터인 카카오프렌즈를 적용한 ‘프렌즈짱’ 스낵을 출시했다. 롯데제과는 비슷한 시기에 네이버의 라인프렌즈 캐릭터들을 활용한 젤리 상품들을 내놓으며 맞불을 놓았다.
문화콘텐츠의 인기 캐릭터들은 대체로 뚜렷한 개성을 갖고 있다. 이를 추종하는 팬들은 해당 캐릭터의 개성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기업들이 자사 제품에 특정 캐릭터를 활용해 마케팅을 하면 해당 캐릭터의 개성을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소비자층이 가격이나 문화적인 저항감 없이 지갑을 열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기획 출신의 한 홍보전문가의 설명이다.
소비자 선점 효과를 노리고 캐릭터마케팅에 나선 기업들도 많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상위권 자동차 제조사들의 기술 평준화가 일어나면서 제품의 사양(스펙)과 품질 차별화만으로는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기 어렵게 됐다”며 “대중적으로 친근한 캐릭터를 활용하면 아직 소비활동을 하기 전인 어린 시절부터 저희 제품에 대한 호감도와 인지도를 높일 수 있어 성인이 된 뒤 충성고객으로 끌어들이는 데 유리하다”고 전했다. 속담을 조금 바꿔 표현하자면 ‘세 살 때 본 캐릭터 영향이 여든까지 소비자의 지갑을 연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효과 때문인지 ‘메이드 바이 코리아 캐릭터’인 K캐릭터들에 대한 마케팅 활용 선호도는 업종을 추월한다. 제과·패션업뿐 아니라 금융업, 자동차·전자 업종 같은 중후장대한 업종들에서조차 K캐릭터 모시기에 동참하고 있다. 전자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카카오프렌즈와 손잡고 해당 캐릭터군의 인기 주자인 ‘어피치’를 채용한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최근에는 중국 샤오미가 최근 라인프렌즈의 대표 캐릭터 ‘브라운’을 차용한 스마트폰을 내놓았다. 레이쥔 샤오미 회장도 평소 라인프렌즈의 팬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국산 만화영화 ‘로보카폴리’를 활용한 교통안전교실을 운영해 눈길을 끌었다. 금융권에서는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가 네이버와 손잡고 ‘샐리’ 등 라인프렌즈 주인공들을 담은 체크카드로 가입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기존 은행들도 ‘쏠 익스플로러스(신한은행)’ ‘위비 프렌즈(우리은행)’ 등을 인터넷·모바일 뱅킹 화면과 실물 카드 등에 활용하는가 하면 휴대폰 테마, 에코백, 목베개 등의 ‘굿즈’까지 판매하고 있다.
이 같은 후방 효과를 제외하더라도 토종 캐릭터산업은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경제효과를 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우리나라의 캐릭터 분야 수출액은 연평균 9.6%씩 늘어 지난해 7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증가세에 힘입어 한국은 캐릭터산업에서 수입보다 수출이 더 많은 무역수지 흑자국으로 전환됐다. 한국 캐릭터산업이 창출한 부가가치액도 2013년 이후 매년 4~8%대의 증가세를 보이며 2016년 4조원을 돌파했다. 해당 성장세가 이어진다면 2018년에는 5조원에 육박했을 것으로 관련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캐릭터산업의 고용 창출력도 급증세다. 2013년 2만7,701명이었던 캐릭터산업 종사자 수는 2016년 3만3,323명에 달해 해당 기간 중 연간 약 7%에 근접하는 성장세를 보였다. 아직 관련 통계가 잡히지는 않지만 해당 추세가 이후 지속됐다면 올해는 종사자 수가 4만명선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숙제는 남아 있다. 콘텐츠산업의 본원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이선싱 사업의 매출은 국내 캐릭터산업 총매출의 10% 정도라고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전했다. 따라서 이 같은 본원 분야의 산업 생태계가 육성될 수 있도록 중소 캐릭터 개발 기업들을 후방 지원할 라이선싱 전문 대행기업들을 육성하는 정책이 요구된다. /민병권·이상훈·유주희·변수연기자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