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비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133조원을 투자한다. 24일 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글로벌 1위에 오르기 위해 133조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연평균 11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다. 초격차전략으로 독보적인 글로벌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의 DNA를 비메모리반도체로 옮겨 심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국내 연구개발(R&D) 분야에 73조원, 생산시설에 60조원을 투자한다. 30조원이 들어간 평택 메모리 공장의 2배가 넘는 금액을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생산라인에 투자한다. 삼성전자는 화성캠퍼스 극자외선(EUV) 라인에 대한 투자와 함께 평택 또는 기흥에 추가 공장을 짓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 비메모리반도체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R&D 인력 6,000명, 제조 인력 9,000면 등 총 1만5,000명을 직접 채용한다.
국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위해 LG실리콘웍스 등 중소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업체)에 대한 지원도 늘린다. 삼성전자의 설계자산(IP)과 소프트웨어를 팹리스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위탁생산 물량 기준을 완화해 중소 팹리스의 소량 제품 생산을 적극 지원한다. ★본지 23일자 1·6면 참조
[삼성 ‘반도체 비전 2030’] JY ‘반도체 왕국’ 마지막 퍼즐...인텔·퀄컴 따라 잡는다
5G·AI 등 4차 산업혁명 맞아
칩 설계·반도체 제작 수요 폭증
R&D 73조·생산시설 60조 투입
물량공세로 시장 확대 선제 대응
국내 중소 팹리스에 IP 개방
위탁생산 물량 기준 완화도
삼성전자가 24일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은 ‘삼성 반도체 왕국’ 완성의 마지막 퍼즐이다. 이병철 창업주의 도쿄선언 이듬해인 지난 1988년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삼성은 33년 만인 2017년 인텔을 제치고 반도체 분야 글로벌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삼성에 ‘반도체 1위’는 2% 부족했다. 허약한 비메모리사업 때문이다. 이번 비전은 ‘선대가 다진 메모리 초석 위에 비메모리도 우뚝 세우겠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승부수로 볼 수 있다. 비메모리 육성 방안은 크게 두 갈래다. 우선 시스템LSI,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설계) 등 비메모리 분야에 총 133조원을 투자해 오는 2030년 1위에 오르겠다는 ‘삼성의 성장 로드맵’이다. 팹리스(설계전문업체) 지원 등을 통해 반도체 생태계를 한 차원 높이려는 ‘대·중소기업 상생대책’이 다른 하나다. 그간 메모리 특수를 주도하며 국가 경제를 떠받쳐온 삼성이 더 큰 시장인 비메모리에서 새 성장을 모색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재계의 한 임원은 “삼성이 메모리 성공 DNA를 바탕으로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10년 내 최고에 등극하겠다는 목표를 구체화한 것”이라고 짚었다.
◇R&D에 73조원, 생산시설에 60조원 물량공세=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올해 비메모리 시장 규모는 3,212억달러로 전체 반도체 시장(4,837억달러)의 66%에 이른다. 이미 메모리 시장보다 크다.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5세대(5G)·인공지능(AI)·전장 등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칩 설계와 이에 따른 반도체 제작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삼성이 2030년까지 총 133조원을 투입하는 배경이다. 선제투자로 급격히 커지는 시장에 맞춰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분야별로는 연구개발(R&D) 73조원, 생산시설 60조원이다. 삼성으로서는 R&D 강화를 통해 선두기업과의 격차 축소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삼성이 그나마 잘하는 분야로 시스템LSI에서는 이미지센서(CIS, 점유율 19.6%, 소니에 뒤진 2위, 2018년 매출 기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칩(점유율 12%, 퀄컴·미디어텍·애플에 이은 4위) 등이 꼽힌다. 파운드리도 19.1%로 TSMC 다음이다. 삼성은 73조원을 투입해 이 분야를 키우는 한편 5G·전장·AI 등 신시장에서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전망된다. R&D 인력으로는 6,000명을 새로 채용한다. 2030년까지 전체 고용예상인원(1만5,000명)의 40%에 해당할 만큼 만만치 않은 규모다.
파운드리 공장 건설 등 시설투자에도 60조원을 쓴다. 평택에 있는 메모리 1공장에 들어간 돈이 30조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비메모리 시설에 메모리 공장 2개에 해당하는 시설투자를 한다는 의미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현재 화성에 극자외선(EUV) 라인을 짓고 있는데 이곳이 완성되면 추가로 공장을 짓게 된다”고 말했다. 유력한 지역으로는 경기도 평택·기흥 등이 꼽힌다.
◇국내 팹리스에 진입장벽 낮춰 생태계 강화=이번 비전에서 팹리스 지원 방안은 단연 돋보인다. 삼성은 인터페이스 설계자산(IP), 아날로그 IP, 시큐리티 IP 등을 팹리스에 개방하기로 했다. 쉽게 설명하면 삼성이 만들 수 있는 분야를 미리 기업에 알려주고 이를 반영해 제품을 설계하도록 유인한다는 뜻이다. 중소 팹리스 입장에서는 시행착오를 줄여 삼성과 파운드리 분야에서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구용서 단국대 교수는 “7나노, 5나노와 같은 미세공정 기술도 중요하지만 결국 파운드리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IP를 보유하고 있느냐에 달렸다”며 “이제 수요가 높은 자율주행이나 AI 분야에서 팹리스들이 많이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탁생산물량 기준을 완화하기로 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중소형 팹리스는 속성상 다품종 소량생산을 한다. 퀄컴·애플 등 메이저 업체와는 다르다. 그래서 중소 팹리스에 물량 기준은 넘기 힘든 장벽이었다. 이번 조치로 대만 파운드리 업체, DB하이텍 등에 물량을 맡겨왔던 국내 중소형 업체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됐다. 업계의 한 임원은 “앞으로 삼성 파운드리사업부의 고객 포트폴리오가 실리콘웍스 등 국내 업체로 대거 다양화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비메모리 쪽으로의 인재 유입도 기대된다. 구 교수는 “(삼성의 대책으로) 대학에서부터 비메모리 인재 양성에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지는 셈”이라며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 자회사인 시스템IC가 중국으로 생산설비를 이전하는 것도 중국에 팹리스가 많아 물량을 따기 쉽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상훈·박효정기자 s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