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 국회를 연출했던 패스트트랙(신속지정안건) 정국이 풀리기는커녕 더욱 첨예한 여야 간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패스트트랙에 극렬하게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은 장외집회를 이어가며 지지층의 결집을 도모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민생포기정당’ 프레임을 앞세워 한국당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거대 양당의 총력 대결은 결국 내년 4·15총선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좀처럼 출구전략을 찾지 못한 채 여야의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면서 시급한 민생법안은 국회에 묶여 한발도 떼지 못하고 있다. 특히 ‘타이밍’이 중요한 추가경정예산안이 패스트트랙에 발목이 잡혀 5월 국회 통과마저도 미지수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30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현 정부는 엉터리 경제정책으로 경제를 무너뜨리고 있으나 좌파 경제실험을 계속하고 있다”며 “좌파독재를 막고 자유대한민국을 회복할 수 있도록 강고한 투쟁을 해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도 “사회주의경제가 들어서 의회와 사법부도 청와대 권력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당은 강성 발언만큼이나 대대적인 장내외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주말 광화문 장외집회를 상시농성으로 전환해 당 대표 집무실을 농성천막으로 이전하고 17개 시도당이 천막농성에 돌입할 계획이다. 광화문 집회 규모도 부산과 대구 등 권역별 집회로 확대해 여론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한국당의 장외투쟁을 민생포기정당으로 규정해 대야 압박에 나서고 있다.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며 “한국당은 무모한 폭력과 불법행위를 중단하고 국회로 돌아와 법안심의와 민생현안 해결에 동참해야 할 것”이라며 “석고대죄하고 즉각 국회 정상화에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집권여당으로서 한국당에 대한 압박을 밀어붙일 수만도 없다. 당장 급한 불은 추경안 처리다. 추경을 처리하고 민생경제법안을 통과시켜 실질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여당으로서 한국당을 국회로 다시 불러들일 유인책 마련이 필요한 국면이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한국당이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했다며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던 민주당은 이날 한국당 의원과 당직자에 대한 3차 고발을 늦추며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이해찬 대표도 “4당이 합의한 것을 기초로 한국당과도 논의를 많이 해 합의 처리하도록 할 것”이라고 유화 제스처를 보였다.
한국당도 경제계 최대 현안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최저임금법 개정 등을 무조건 모른 체할 수 없는 형편이다. 특히 이번 추경이 미세먼지대책과 강원도 산불, 포항지진 복구비용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장외투쟁을 고집하다 역풍을 맞을 우려도 있다. 투쟁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도 무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정치권은 민주당 차기 원내지도부가 들어서는 오는 5월8일 이후가 대치국면이 풀리는 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당 새 원내지도부 구성이 한국당의 국회 복귀 명분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치권도 악화하는 여론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1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생존이 걸린 만큼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종호·안현덕기자 joist1894@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