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에게 기업을 넘겨주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자식이 기업을 잘 운영할 수 있는지 그릇부터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지금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직원에게 회사를 맡기면 (회사가) 100년 더 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명환(68) 덕신하우징 회장은 오랜 고민 끝에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경영일선에서 떠날 때 직원이 주인인 ‘사원주주회사’로 만들 계획이다. 덕신하우징은 ‘본인의 재산’이기보다 ‘300명 직원의 재산’이란 게 김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김 회장은 14일 서울 양천구 신월동 덕신하우징 사옥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회사를 직원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결심했다. 구체적인 그림이 나오는 데는 5~6년 후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 하는 내내 김 회장은 일반적으로 오너들이 드러내놓고 말하기를 꺼려 하는 상속 문제에 대해서도 거침 없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는 건물과 교량에 쓰이는 건축용 자재인 데크플레이트 생산을 위해 ‘40년 외길’을 걸었다. 건설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덕신하우징은 3년간 1,200억~1,350억원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김 회장은 거래처인 대기업과 신뢰를 쌓는 게 사업 초기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고 고백했다.
“사업은 항상 초기에 인정을 못 받는 게 가장 힘들다. 우리의 기술, 소비자, 매입처, 돈이 필요할 때 찾는 은행까지 모두 처음에는 우리를 안 좋게 봤다. 성실과 신용, 품질이 전부라는 생각으로 승부를 걸었다.”
기술력을 거래처로부터 인정받자 이 분야의 후발주자였던 덕신하우징이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1992년 김포에서 공장을 신축하고 2003년 천안에 공장을 지었다. 2007년 천안에 있는 생산설비를 더 늘렸다. 그러자 그해 상반기 매출액 기준으로 처음 업계 선두가 됐다. 회사는 지난 2013년 ‘수출의 탑 100만불탑’을 수상한 지 3년 만에 ‘1,000만불탑’을 쌓았다.
이런 성과에는 김 회장의 오너 경영이 있다. 덕신하우징은 2010년 회사를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지만, 지금도 김 회장은 굵직한 경영 현안을 본인이 결정한다. 2015년 베트남 진출이 대표적이다. 실패와 성공의 결과를 책임지는 게 오너의 자세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무리를 해서라도 투자를 하느냐. 현재에 안주하느냐는 오너가 책임지고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기로 한 이유는 ‘그릇’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일부 기업의 편법 상속 등을 목격하면서 자신은 떳떳한 기업가로 남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이다.
“상속세법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건가. 버는 만큼 내라는 거 아닌가. 그럼 로또에 붙는 세금은 왜 많다고 문제 삼지 않나. 상속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오너의 의지에 달렸다. 아무 노력 없이 부를 얻게 된 오너 2세가 허례허식에 빠진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이런 그의 지론은 회사 경영에 그대로 반영된다. 올해 3월 덕신하우징은 서울시와 천안시로부터 모범납세자로 선정됐다
김 회장은 자식뿐만 아니라 회사의 경영진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외제차를 타고 온 면접자는 되돌려보내라”고 했던 일화는 지금까지도 사내에서 유명하다.
그렇듯 거침 없고 일에 있어서는 엄격한 그가 한없이 너그러워 질 때가 있다. 바로 어린아이들을 만날 때다. 2013년 백두산, 2014년 독도에 이어 올해도 광복절에 300명의 어린이와 중국 상해로 역사 탐방을 떠난다. 어린이 골프대회는 벌써 6회째를 맞았다. 사재를 출연한 장학재단인 무봉재단이 설립되면, 여생을 아이들을 위한 장학사업에 바칠 생각이다. 어린이들이 자신처럼 어려운 시절을 살지 않게 하고 싶은 바람에서 결정한 일들이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6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창경궁으로 수학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수학여행비를 7명만 냈습니다. 124명 중에 고작 7명만 수학여행비가 있었던 거죠. 지금도 가정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장학금을 나눠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곤 합니다.” 경영자로서 차가운 이성과 인간으로 따뜻한 심성, 주변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김명환 회장의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