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에 시달리는 터키가 10여년 만에 외환거래세를 부활시켰다. 자국 통화인 리라 가치 급락을 막고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기습적으로 세금을 물린 것이다.
터키 정부는 외환 판매자에게 외환거래세(BSMV)를 0.1% 세율로 부과하는 내용의 대통령 행정명령을 15일(현지시간) 관보에 발표했다. 외환거래세는 외환 판매자에게 부과되지만 은행 간 거래나 재무부 상대 거래, 외환 부채를 은행에 상환하는 거래에는 예외적으로 부과되지 않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외환거래세가 부활한 것은 역외 계좌 등의 부작용을 근절하고자 폐지된 지 약 10년 만이다. 터키는 지난 1998년 0.1%의 외환거래세를 물렸다가 2008년부터 ‘제로’ 수준을 유지해왔다.
이번 조치는 환투기를 차단하고 외환 수요를 제한해 리라화 가치 하락을 억제하려는 취지로 보인다. 이미 기준금리가 24%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추가 인상에 부담을 느끼고 과세를 택한 것이다. 리라화 가치는 지난해 미국 달러 대비 36% 평가절하됐고, 올해도 약 12% 떨어졌다. 2006~2011년 터키중앙은행 총재를 지내고 현재 야당 좋은당(IYI Parti) 부대표를 맡고 있는 두르무시 이을마즈는 이날 트위터에서 “토빈세가 돌아왔다”며 “인플레이션 통제로 통화를 방어하지 못하는 정부가 세금을 동원해 국민이 외환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려 한다”고 꼬집었다. 토빈세는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이 주창한 외환거래세로 투기성 외환거래를 막는 규제방안으로 주로 거론된다.
또 재정적자가 거듭되는 상황에서 터키 정부가 세수 확충을 위해 외환거래세를 부활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이번 조치로 연간 10억∼40억리라(2,000억∼7,900억원)에 이르는 세수 확충 효과가 예상된다. 올해 3월 전국 지방선거와 감세 조치 등으로 터키의 재정적자는 지난달 183억리라를 기록했고, 올 들어 4개월간 누적 재정적자가 연말 목표액의 68%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금융 위기를 겪었던 터키는 올해 위기가 재발하자 시장 안정 조치를 잇따라 내놨다. 중앙은행이 이달 9일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주요 수단인 ‘1주 리포(repo)’ 자금 제공을 잠정 중단해 리라 급락을 막았고, 올해 3월 역외 시장에 리라 유동성 공급을 완전히 차단하는 ‘비상’ 조처를 취하기도 했다. 재정난이 이어지자 터키 정부는 중앙은행의 ‘법정준비금’을 정부 예산으로 돌려 적자를 메우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외환거래세가 임기응변에 불과할 뿐 중장기적으로 오히려 시장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은행 크레디아그리콜 CIB의 신흥시장 전략가 기욤 트레스카는 블룸버그에 보낸 이메일에서 “외환거래세는 외국인의 터키 투자의욕을 더욱 떨어뜨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