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시승기] 도로위 요트 '레인지로버', 해지는 서해로 달리다

■ 레인지로버로 영종도 가는 길

'8기통 디젤엔진'으로 부족함 없는 힘

부드러운 승차감·고급스런 실내도 장점

과도한 전자장비·부족한 스피커는 흠




해가 길어졌다. 오후6시에 칼퇴근을 하고도 한참을 기다려야 석양을 볼만한 계절이다. 차가 막히는 도심이 답답하다면 평일에 퇴근 도장을 찍고 여유롭게 석양을 보며 드라이브를 할 수 있는 영종도로 가는 길이 있다. 목적지는 을왕리해수욕장을 찍으면 된다. 다만 반드시 인천대교가 아닌 북청라인터체인지(IC)를 지나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서울을 벗어나면 서해로부터 이어지는 아라뱃길을 보며 달릴 수 있다. 영종대교로 운염도를 지나 인천국제공항 북쪽 해안도로를 달리면 바다를 옆에 낀 한적한 도로를 만나게 된다. 차분히 항속하는 차 안에서 해가 지는 풍경을 마음껏 감상하는 시간을 즐겨볼 만하다.



이 길을 함께 달린 차는 레인지로버의 기함 ‘뉴 레인지로버 오토바이오그라피 SDV8 롱휠베이스’ 모델이다. 지난 1970년에 등장한 레인지로버는 럭셔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명차의 반열에 올랐다. 수많은 검증을 거쳤고 완벽에 가까운 상품성을 얻었다. 이 차를 타보면 유명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왜 시상식에 레인지로버를 타고 와 내리는지, 국내 대기업 회장이 이 차를 타고 강원도를 즐겨갔는지 알 수 있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높고 넓은 앞창이 보여주는 탁 트인 시야가 눈에 들어왔다. 시동을 걸면 이 차가 디젤차인지조차 느낄 수 없다. 조용하다는 디젤 SUV를 여럿 타봤지만 레인지로버 SDV8은 특별히 정숙하고 진동이 적다. 엔진의 회전 질감이 고풍스럽다. 가속 페달에 힘을 주면 ‘우우웅’ 공룡 울음같이 엔진 소리가 공명한다. 5,200㎜ 길이에 1,983㎜ 폭, 1,868㎜ 높이가 보여주듯 이 차는 거대하다. 터보를 단 339마력 V8 디젤엔진은 두터운 토크로 큰 차를 부족함 없이 이끈다. 시속 100㎞에 닿기까지 부드러우면서도 빠른 변속이 인상적이다. 3세대부터 10년 넘게 궁합을 맞춰온 ZF 8단 변속기는 운전자에게 자신감을 준다.


파워트레인의 조합이 워낙 잘 맞은 덕에 제어가 자유롭다. 일반적인 대형 SUV는 차체가 크지만 반응이 빠르지 않아 차선 변경 때 진입 시점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레인지로버는 다르다. 롱휠베이스로 200㎜가 길어졌음에도 큰 앞머리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더블위시본이 장착된 전륜이 움직이면 스티어링 휠로 곧바로 차체의 위치와 향하는 방향을 느낄 수 있다. 스포츠 모드로 놓으면 차체는 탄탄해지고 스티어링 휠 반응이 굵어진다. 탄력적인 주행이 가능하다. 엑셀 페달의 답력도 좋다. 가속을 위해 눌렀을 때와 속도를 줄이기 위해 발을 떼도 변속기가 일정한 답력을 발에 전달한다. 운전하기가 쉽고 편하다.



가장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승차감이다. 레인지로버의 에어서스펜션 기술은 숙성될 대로 숙성돼 흠잡을 수 없다. 직진으로 항속할 때면 마치 요트를 타는 느낌이다. 편안한 승차감을 구현한 다른 대형 SUV 모델이 일렁이는 파도 위를 출렁출렁 넘어가는 느낌이라면 레인지로버는 잔잔한 물살을 가르면서 향해 하는 요트 같이 도로 위를 달린다. 울퉁불퉁한 도로나 요철을 넘을 때 다른 대형 SUV들은 파도와 부딪혀 술렁이는데 레인지로버는 파도 위를 타버린다. 충격을 줄이는 감각이 일품이다. 불규칙한 도로를 만나 서스펜션이 위로 솟았다가 땅을 다시 짚을 때 차체는 충격을 한 번이 아니라 두세 번 미세하게 받으며 탑승자의 엉덩이를 상당히 편하게 만들어준다.

코너를 조금 빠른 속도로 진입해 차를 돌려봤다. 차가 밖으로 던져지는 느낌이 아니라 제트보트가 빠른 선회를 하며 물살을 일으키면서 도는 느낌을 준다. 약 두 시간에 걸쳐 세 명의 인원을 태우고 이동했는데 한 시간쯤 지나자 “와, 정말 승차감이 좋다”는 말이 나왔다.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왜 굳이 레인지로버의 뒷좌석에서 내려 레드카펫을 밟았는지 알만하다. 영종도로 향하는 길은 높은 차체와 탁 트인 시야, 호수를 가르는 듯한 승차감, 레인지로버가 주는 감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실내도 고급스럽다. 큰 스티어링 휠에 수평 형태로 전개된 실내, 천장까지 가죽으로 감쌌다. 값싼 소재를 찾을 수 없다.

이런 레인지로버에서 굳이 불만을 찾자면 과도한 전자장비의 사용이다. 센터 디스플레이와 조작부까지 디스플레이로 배열돼 있다. 터치할 때마다 많은 지문이 묻어 낮에 보면 깔끔하지 않다. 심지어 차 문에 있는 사이드미러 조작 부분까지 터치식으로 넣어놨다. 조작부는 시동을 켜고 끌 때 심지어 한 번씩 꺼지기도 했다. 특히 큰 디스플레이를 채용하고도 주차할 때 보여주는 서라운드뷰는 작은 화면에 큰 차를 넣어서 주변을 넓게 볼 수 없다. 소프트웨어 최적화에 더 노력해 실용성을 높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메리디안 사운드 시스템도 기본 성능은 훌륭하지만 대당 가격이 2억원이 넘는 이 차에 비해서는 약간 부족하다. 풍부하지만 선명하지 않은 느낌이다. 시승하는 이틀간 스트리밍 서비스의 이퀄라이저(EQ)와 차의 사운드 시스템 설정을 수없이 조작해봤지만 다른 대형 럭셔리 세단급 스피커 수준의 음질을 찾지 못했다.


구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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