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모든 OOO들은 그들의 직업을 잃을 지도 모른다. 일본전기(NEC)는 보통의 속도로 얘기하는, 사람의 음성을 전자적으로 이해하는 ***을 개발, 시판에 나섰다. NEC의 ***은 일본 말의 95%, 숫자는 99.8% 정도까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신기술 제품을 소개하는 기사의 일부분이다. OOO은 어떤 직업일까? NEC는 *** 제품을 언제 출시했을까? 이 기계가 음성을 인식한다고 하니, 인공지능(AI) 스피커나 아이폰의 쉬리와 유사한 것 같다. 이 제품 때문에 어떤 직업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기사는 이 제품의 혁신성이 특정 직업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예상하고 있다.논란이 되고 있는 택시 업계와 렌터카 호출 서비스 ‘타다’ 사이의 갈등이 연상되기도 한다. 신기술 또는 신기술에 기반한 서비스는 종종 기존 직업군과 충돌한다. 특히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22일 “혁신업계(쏘카의 이재웅 대표)의 오만함”을 지적해 논란이 커졌다.
최 위원장은 혁신사업으로 직접 피해를 입는 계층에 대해 혁신사업 주체가 “최소한의 존중과 예의”를 보여줘야 한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타다 서비스의 혁신성 자체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직업적 지위’가 흔들리는 택시 기사들에 대한 정책 당국자의 정무적 배려가 녹아 있는 발언이다.
이재웅 대표는 “이 분은 왜 이러시나, 출마하시려나?‘라고 받아쳤다. 이 대표에게 장관급 공직자와 같은 ‘정무적 감각’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당국자의 배려와 타다의 오만을 강렬하게 대비시킨 것은 분명하다. 이 대표는 비즈니스와 정치의 차이를 실감했으리라.
기술 발전 뒤에는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택시 기사들은 생존권을 위협당하고 있다고 반발하지 않나. 카풀 서비스가, 렌터카 호출이 택시 기사 수입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데이터로 따져보자는 차량 공유 업체의 주장은 합리적이다. 이에 대해 택시 업계 종사들의 분신이라는 극단적 행동이 잇따르는 것은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합리적 주장이 오만으로 보일 수도 있다. 오만과 나란히 따라다니는 것이 편견이다. 자신의 관점에서만 현상을 판단하는 것, 기술이 만들어 내는 소외는 뒤처진 자들이 오롯이 감당해야 하고, 정부가 알아서 이들을 돌보면 되지 않느냐는 편견.
타다 논란에서 아무도 솔직히 얘기하지 않는 것이 있다. 지난 16일 ’인공지능에게 묻고 사람이 답하다‘는 주제로 ’input‘ 오프 라인 모임이 있었다. input은 기술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디센터가 마련한 학습과 토론 공간이다. 이날 AI 전문가로 참석한 최재훈 LYZE 대표는 ”택시 업계의 주적(?)은 정말 타다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무인 자동차, 자율 주행차는 상용화를 코 앞에 두고 있다. 수 년 내에 운전자가 없는 인공지능 택시가 손님을 맞이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와 있고, 실제로 그런 서비스를 준비하는 글로벌 기업도 있다. 그 때가 되면 사람이 직접 운전하는 일은 말을 타거나, 요트를 모는 것처럼 하나의 스포츠가 될 것이다. 운전사라는 직업이 사라지는 것이다.
택시 기사님들이 지금은 광장에서 ”타도 타다“를 외치고 있지만 ‘그 날이 오면’ 렌트카와 대리 기사를 동시에 제공하는 타다 서비스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타다 소속 대리 기사들도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혁신업계가 오만하다느니, 배려심이 없다느니 입씨름을 하고 있는 이 시간에도 인공지능과 첨단 통신 기술로 무장한 모빌리티 서비스는 착착 준비를 갖춰가고 있다. 택시업계도, 타다도, 그리고 정책 당국도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어쩌면 무의미한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정답을 보자. 위 기사는 38년 전인 1981년 8월 31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것이다.
기사에서 언급한 직업은 ’타이피스트(타자수)‘다. NEC의 신제품 ’전자 타이프라이터‘는 음성을 인식해 바로 문서를 만들 수 있었지만, 타자수 일자리를 뺏지는 못했다. 타자수라는 직업을 없앤 것은 개인용 컴퓨터(PC)다.
오늘날 AI 스피커와 쉬리의 원형은 40여년 전에 이미 존재했다. 타자수의 적이 될 줄 알았던 AI 기술은 지금 택시 기사라는 직업을 소멸시키려 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자들의 분석 기사는 방향이 빗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택시 기사라는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은 어떨까? 최후의 택시 기사를 위해 이 예측이 틀리기를 바래야 할까?
/James Jung기자 jms@decent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