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실질소득증가율 사실상 '0'...가처분소득도 10년만에 줄었다

고소득층 1분기 소득 2015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

좋아졌다는 5분위배율도 여전히 금융위기 수준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1·4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 부문)’는 서민 소득을 늘려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실패한 정책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10.9% 오른 시간당 최저임금 8,350원이 적용된 첫 분기(1~3월)지만 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전국·2인 이상) 근로소득은 되레 급감했다. 전체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줄어들었다. 소득분배지표가 통계 작성이 시작된 후 최악을 기록했던 지난해보다는 소폭 개선됐지만 여전히 금융위기 수준으로 악화해 있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역효과가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분배지표 개선됐지만…5분위 소득 줄어든 영향=대표적 소득분배지표인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올 1·4분기 5.80배로 집계됐다. 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 상위 20%의 평균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숫자가 클수록 분배 정도가 좋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역대 최악을 기록했던 2018년 1·4분기(5.95배)보다 소폭 개선됐다. 정부는 이를 두고 “분배지표 악화 추세가 완화됐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지표의 절대 수준과 개선된 배경을 들여다보면 정부 평가가 무색할 정도다.

5분위 배율 5.80배는 지난해보다는 개선된 것이 맞지만 절대 수준은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10년(5.82배)과 비슷하다. 그나마 지표가 개선된 것도 역설적으로 경기불황으로 주요 기업들의 성과급 지급이 줄어들면서 5분위 소득이 2.2% 감소한 영향이 크다. 1·4분기에 5분위 소득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박상영 통계청 복지통계과장은 “경기 부진으로 기업 실적이 악화하면서 상여금 지급이 줄어 5분위 소득이 감소했고, 이에 따라 결과적으로 5분위 배율이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초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설 상여금을 지급할 계획이라는 기업은 67.8%로 한 해 전보다 3.7%포인트 줄었다. 2017년 4·4분기에 지급돼야 할 상여금이 임단협 타결 지연으로 이듬해 1·4분기에 지급되면서 상대적으로 올해 1·4분기 소득이 줄어든 것으로 보이는 역(逆)기저효과도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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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분가능소득 0.5% 줄어…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선순환 의도와 달리 심각한 부작용도 새롭게 나타났다. 전체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이 줄어든 것이 대표적이다. 소득에서 각종 세금과 연금, 이자 등 비(非)소비지출을 뺀 처분가능소득은 1년 전보다 0.5% 감소한 374만8,000원으로 집계됐다. 처분가능소득이 줄어든 것은 2009년 이후 10년 만이다. 근로소득(0.5%) 증가는 지지부진하고 사업소득(-1.4%)과 재산소득(-26%)이 감소하는 와중에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비소비지출은 8.3% 껑충 뛰며 실제 가계에서 쓸 수 있는 돈을 줄여놓았기 때문이다. 1·4분기 비소비지출은 107만8,000원으로,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다.

경제가 성장하면 소득이 증가하고 처분가능소득도 늘기 마련인데 오히려 뒷걸음질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는 성장했는데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이 줄었다는 것은 가계소득을 늘려주겠다는 정부 정책이 선순환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취약계층이 부메랑을 맞아 소득이 줄어드는 현상은 올 1·4분기에도 확인됐다. 1·4분기에 전체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년 전보다 1.3% 늘었지만 하위 20%인 1분위 소득은 2.5% 줄었다. 특히 직접 일해서 벌어들이는 근로소득이 14.5% 급감했다. 이는 1분위 가구당 취업자 수가 지난해 0.67명에서 0.65명으로 줄어든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1분위 가구의 사업소득이 10.3% 늘어나기는 했지만 이 역시 비교적 중산층에 속하는 2~3분위에 속했던 자영업 가구의 일부가 1분위로 추락한 영향이 크다. 1분위 가구 가운데 자영업자 비중은 늘었고 2분위는 줄었다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다. 박 과장은 “저소득가구의 소득 급락세가 멈춰선 측면은 있지만 여전히 시장에서의 소득 여건이 부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분배지표가 개선됐으나 저소득층의 소득 여건이 여전히 엄중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면서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분배 개선세가 안착되고 저소득층 소득이 회복될 수 있도록 총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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