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청도는 가을에 가야 한다. 청도 군내 곳곳에 식재돼 있는 청도반시가 주황색으로 익을 즈음 이곳 산하는 단풍으로 물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도는 봄에도 가봐야 한다. 십수 년 전부터 청도의 별미로 떠오른 삼겹살에 얹어 먹는 미나리가 한창인 까닭이다. 기자는 2년 전 청도를 한여름에 찾았다. 그때는 연지에서 연꽃을 보고, 소싸움을 봤다. 그래서 이번에는 봄·가을을 택해 오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시간은 소박한 희망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찾은 화양읍성은 면모를 일신해 야경이 찬연했고, 운문사를 조망하기 위해 오른 북대암의 바람은 청정한 기운을 더했다.
청도에 도착한 첫날 혼자 이곳저곳을 배회하다 해 질 녘에 눌미교에 도착했다. 눌미교는 폭이 100m쯤 되는 하천 위에 놓인 다리인데 난간도 없고, 승용차 두 대가 교행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다리로 지도에는 고평교로 표시돼 있다. 눌미교 아래를 흐르는 하천 이름은 청도천이다. 동쪽에서 발원해 서쪽으로 흐르는지 해는 정확히 하류 방향을 향해 떨어졌다. 청도천을 따라 식재된 가로수가 하천 위에 비친 반영이 저녁 햇살에 더욱 아름다웠다. 눌미교에 도착했을 때 낚시꾼 몇 명이 세월을 낚고 있을 뿐 다리는 한산했다.
어둠이 내린 청도에서 가볼 만한 곳이라면 단연 화양읍성이다. 2년 전 청도군을 찾았을 때 화양읍성은 군데군데 복원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제는 공사가 끝났는지 말끔히 단장된 성벽과 문루를 조명이 비추고 있었다. 배명희 해설사는 “화양읍성은 다른 읍성들과 달리 높이 50㎝ 안팎의 기저층이 남아 있어 그 위의 성곽을 복원했다”며 “청도읍성이 화양읍성이라고 불리는 것은 청도군의 중심지가 화양읍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화양읍성의 야경을 만끽한 이튿날 아침 적천사로 향했다. 보조국사 지눌이 세웠다는 절에는 800년 된 은행나무(천연기념물 402호)가 입구에 버티고 서 있는데 상당한 수령에도 흠결 없는 모습이 오랜 기간 수명을 이어갈 것 같았다. 적천사에서는 반드시 보고 가야 할 것이 있는데 보물 1432호 괘불탱화와 사천왕상이 그것이다. 탱화는 큰 행사가 있을 때 절 마당에 걸어놓는데 높이 12m, 폭 5m로 크기가 상당하다. 이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사천왕상이다. 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64년 복원했다고 하는데 기자가 돌아본 국내 어떤 사찰의 사천왕상보다도 묘사가 치밀하고 정교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경치를 품은 절은 운문사다. 운문사는 557년인 진흥왕 18년에 창건된 절로 처음에는 ‘대작갑사’로 불리다 보양국사가 태조 왕건을 도와 이 일대를 평정한 후 ‘운문선사’라는 편액과 함께 토지 500결을 받으면서 새 이름을 얻었다.
이 절이 인상적인 것은 대부분의 사찰이 산중에 있는 것과 달리 평지에 지어져 독특한 형태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백미가 만세루인데 일반적인 사찰 누각이 2층인 것과 달리 단층 구조를 하고 있다. 배 해설사는 “다른 사찰은 산지 가람이라 뒤편의 불전이 높지만 운문사는 평지에 있어 만세루를 2층 이상으로 지었을 경우 대웅전을 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설계”라며 “하지만 기단부 형태를 1층 모양으로 만들어서 도합 2층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 눈길을 끈다”고 말했다. 운문사에는 독특한 건축물 외에 보물 9점과 경북도 문화재 3점이 있는데 그에 더해 챙겨봐야 할 것은 운문사 전체의 풍광이다. 평지에 있는 운문사를 보려면 인근에 있는 암자인 북대암에 올라야 한다.
북대암은 운문사 입구의 오른편 비탈 꼭대기에 있는데 차량을 이용하면 10분 거리지만 걸어서 오르면 경사가 급해 40분은 잡아야 한다. 북대암에 올라서 아래를 굽어보면 운문사 전체가 조감도를 그려놓은 것처럼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모습이 아름답다.
청도를 떠나기 전 반드시 먹어봐야 할 것은 미나리 삼겹살이다. 이제는 전국구 명성을 얻어 서울의 대형마트에서도 봄철이 되면 청도의 레시피를 본뜬 미나리 삼겹살 세트를 판매할 정도지만 본향의 맛은 절대 흉내 낼 수 없다. 청도에서 미나리 삼겹살을 맛볼 수 있는 집을 꼽으라면 ‘봉황’을 추천할 만하다. 이 집은 냉장 삼겹살에 인근에서 재배한 미나리를 다듬어 함께 상에 올리는데 미나리가 출하되는 12월부터 5월까지만 맛볼 수 있다. 미나리는 500g에 8,000원, 삼겹살에 150g에 9,000원을 받는다. 이 집이 개업을 한 것은 지난 4월이지만 이미 지역에서는 12년간 한정식을 운영해온 주인의 손맛이라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다. /글·사진(청도)=우현석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