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당정 협의 시스템은 청와대와 여당의 요구사항을 관계 부처가 수용하는 것입니다. ‘당정 협의’라기보다 ‘청·여 지시’가 더 맞는 말 같습니다.” (정부의 한 국장급 공무원)
집권 여당과 정부가 국가의 정책을 조정하는 당정(黨政) 협의의 조율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쉽게 말해 당이 정에 일방적으로 지시를 하달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정책이 관료의 전문적 지식이 아니라 정권의 코드를 맞추려는 정치인의 정무적 판단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별개로 당정 협의 과정에서 유출된 정보로 시장 교란 유발, 정부 사업 좌초, 외교적 마찰 야기 등의 여러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중앙부처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 2일 “보통 장차관이 발표하는 정책은 수십 명의 공무원이 한두 달 정도 거의 매일 야근해가며 만든다. 정책의 실효성·지속가능성·부작용 등 따져봐야 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그렇게 신경 써서 정책을 수립하면 뭐하겠나. 당정 협의서 당이 한마디 하면 ‘기술적인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라고 말끝을 흐렸다. 실제 최근 당정 협의에 참여한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당 쪽에서 정부가 마련한 정책에 대해 질문을 곧잘 한다”며 “그런데 그 질문에 당의 의중이 묻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형해화된 조율 기능이 현재 당정 협의의 구조적 문제라면 정보 유출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각종 부작용은 일종의 2차적 문제다. 일례로 설훈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31일 “정부가 다음주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에 쌀 5만톤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지만 정치권에서는 설 의원이 당정 협의 과정에서 취득한 정보를 의도치 않게 유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설 의원의 언급이 국제기구 또는 북한과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것이라면 국제기구 또는 북한 등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