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기자의눈]'구미형 일자리'도 경제실험인가




산업부=양철민기자

“민간기업이 거기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지난달 27일 SK이노베이션 기자간담회. “구미형 일자리에 대해 청와대로부터 제의를 받은 적이 있느냐, 구미형 일자리의 경제성을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잠깐 숨을 고른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의 답이다. 김 사장은 간담회 후 별도 자리에서도 여타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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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장이 애써 답을 피했지만 구미형 일자리에 대한 SK이노베이션의 고민은 당시 간담회에서 사실상 모두 드러났다. 윤예선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부 대표는 국내 투자 등과 관련한 질문에 “국내 투자는 우리도 하고 싶지만 대부분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공장 주위에 배터리 공장 건설을 전제로 발주한다”며 “현재 중국·유럽·미국공장 또한 완성차 업체로부터 수주를 받아 공장을 설립 중이며 수주 없이 짓는 공장은 한 곳도 없다”고 밝혔다. 현 상황에서는 국내에 배터리 공장을 지을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은 셈이다.

실제 국내 업체 중 LG화학은 충북 오창에, 삼성SDI는 울산에, SK이노베이션은 충남 서산에서 각각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가동 중이다. 정부는 전기차 배터리가 ‘포스트 반도체’가 될 수 있다고 보지만 이들 3사는 독과점 지위를 구축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상황이 다를뿐더러 아직 수익도 제대로 못 내고 있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중국의 CATL과 BYD를 비롯해 일본의 파나소닉 등이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격전지이며 유럽의 완성차 업체들은 자체 공장 건설 등을 계획하고 있다. 경제성보다는 정무적 판단이 우선돼 한국 배터리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경우 가장 득을 보는 곳은 중국과 일본이다. 지역상생형 일자리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자칫 ‘공멸’로 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 당국자들은 로마 제국의 기틀을 닦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고 해도 애초에 그 일을 시작한 동기는 선의였다”는 발언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무모한 상생경제 실험은 자영업자를 벼랑으로 내몰고 있는 최저임금 정책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양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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