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는 것은 주식시장에 좋은 신호가 아니다.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는 경기가 나쁠 때 단행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미국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과거의 경험칙대로라면 주식시장에 악재일 텐데 시장 반응은 좀 다르다. 거의 100% 호재로 해석되고 있다. 논의되는 금리 인하의 맥락이 통상적인 경우와 다르기 때문이다. 경기가 나쁘지 않더라도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보험 목적의 선제적 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는 것이다. 지난 4월 초 연준의 리처드 클래리다 부의장은 ‘금리 인하가 늘 경기 침체와 연관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경기 침체와 관련 없는 금리 인하라면 시장 참여자들이 악재로 해석할 이유는 없다. 경기가 나쁘지 않은데 금리 인하를 단행할 명분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질 수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사례들이 있었다. 실제 지난 1995년과 1998년 보험용 금리 인하가 단행된 바 있다.
두 시기의 공통점은 순환적 경기 사이클로 설명하기 힘든 외부 변수들이 있었다. 1995년 당시 연준은 기준금리를 세 차례 인하하면서 6.0%에서 5.25%로 낮췄다. 금리 인하 기간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6.9% 상승했다. 1995년은 경기가 둔화하는 국면이기는 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994년의 4.0%에서 1995년 2.7%로 하락했다. 1996년 성장률이 다시 3.8%로 높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후적 평가이기는 하지만 당시의 경기 사이클이 심각한 둔화 국면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1995년의 금리 인하는 경기 사이클보다 외적인 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았다. 1995년 초 멕시코가 외환위기를 맞았다. 당시는 세계화 이데올로기가 절대 진리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는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출범하자마자 멕시코가 외환위기를 맞아 미국도 부담을 크게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1995년 하반기에는 예산안을 둘러싼 의견 대립으로 미국 연방정부가 사상 최대 기간인 3주 동안 폐쇄됐던 경험이 있다. 이런 대내외적 환경이 연준의 금리 인하를 정당화시켰다.
1998년의 금리 인하는 경기 침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당시 미국 경제는 정보기술(IT) 혁신에 기반한 생산성 개선으로 호황 국면에 있었다. 주식시장도 장기 강세장을 구가하면서 순항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98년 8월 러시아 채권에 투자했던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가 파산하면서 미국 금융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거대 플레이어의 파산으로 S&P500지수는 20%가 넘게 급락했고 이때 연준이 나섰다. 앨런 그린스펀이 이끌었던 연준은 기준금리를 5.5%에서 4.75%로 세 번 낮췄고 미국 증시는 V자형 반등세를 나타내면서 강세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최근 논의되는 금리 인하도 경기 요인보다는 미중 무역분쟁 가열에 따른 잠재적 리스크 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떤 식으로 봐도 주식시장에 해가 될 일은 아니다.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으로 만들어진 2009년 이후의 미국 증시 강세장의 막바지 불꽃을 다시 중앙은행이 태우고 있는 양상이다. 미국 금리 인하는 글로벌 유동성의 총량을 늘리고 강달러 기조를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증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