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초의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우승은 아쉽게 손에 넣지 못했지만 축구 팬들의 가슴에는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번 대회 최고의 발견인 이강인(18·발렌시아) 때문이다.
TV 프로그램 ‘슛돌이’ 출신의 이강인은 손흥민(27·토트넘)의 스타성과 성실함, 박지성(38·은퇴)의 헌신적 플레이를 모두 갖춘 전에 없던 캐릭터로 세계대회를 통해 검증을 마쳤다. 그는 16일(한국시간) 폴란드 우치 경기장에서 끝난 우크라이나와의 결승 뒤 대회 최우수선수(MVP)상인 골든볼을 수상했다. FIFA의 테크니컬스터디그룹(TSG)이 기량과 팀 공헌도 등을 면밀하게 평가해 7경기 2골 4도움의 이강인에게 트로피를 안겼다. 아시아 선수로는 지난 2003년 아랍에미리트(UAE)의 이스마일 마타르 이후 16년 만의 수상이고 한국 선수가 FIFA 주관 대회에서 골든볼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수비수 홍명보의 브론즈볼(3위) 수상이 이전까지 최고 영예였다. 이강인은 유럽 언론이 선정하는 2019 골든보이 어워드 후보에도 우크라이나 골키퍼 안드리 루닌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골든볼은 2005년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2007년 세르히오 아궤로(아르헨티나), 2013년 폴 포그바(프랑스) 등이 받은 상이다. 이들을 포함해 대부분 우승팀에서 골든볼 수상자가 나왔는데 이강인은 준우승임에도 이 상을 받을 정도로 빼어났다. 1대3으로 역전패한 이날 결승에서도 이강인은 빛났다. 전반 5분 페널티킥을 깔끔하게 넣었고 거의 모든 패스와 프리킥·코너킥이 날카로웠다. 안정환 해설위원은 “패스가 손으로 건네는 것 같다”고 극찬했고 서형욱 해설위원은 “이강인한테서 공을 뺏는 방법은 파울밖에 없다”며 볼 키핑과 탈 압박 능력을 칭찬했다.
한국 축구사에 원조 왼발의 달인으로 통하는 하석주 아주대 감독은 “이강인의 왼발이 특별한 이유는 경기장 구석구석을 찌르는 넓은 시야에 있다. 의미 없는 백패스와 횡패스가 거의 없고 공격 진영으로 강하게 뿌리는 종패스를 즐긴다”며 “탁월한 축구 센스까지 단점이 거의 없다. 분위기를 한 번에 바꿀 수 있는 전담 키커를 가지고 있는 팀은 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2골 4도움 압도적 기량 이강인
메시 등 받았던 골든볼 수상
자로 잰 패스에 헌신적 플레이
손 ‘스타성’·박 ‘성실성’ 겸비
“같은 연령대서 세계 최고” 찬사
아약스·PSV 등 앞다퉈 러브콜
이번 대회 주류인 20세 선수들보다 두 살 어린 이강인은 18세3개월28일로 역대 최연소 골든볼 수상 부문 2위 기록도 썼다. 18세 골든볼 수상은 14년 만이자 통산 네 번째인데 14년 전 수상자가 바로 ‘축구의 신’ 메시다. 메시는 당시 18세8일로 최연소 골든볼 기록을 쓴 뒤 FC바르셀로나에서 두 번째 시즌을 맞았고 8골을 뽑으며 리그 정복의 기틀을 다졌다. 메시와 같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소속의 이강인도 다음 시즌이 기대된다. 유럽 유수 구단들의 스카우트와 에이전트가 155명이나 몰린 무대에서 화려한 쇼케이스를 마친 이강인은 거취를 놓고 행복한 고민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즌 발렌시아에서 주로 벤치에 머물러 출전에 목마른 그는 소속팀 잔류와 이적 사이에서 고심 중인데 이미 스페인 레반테와 네덜란드 아약스, PSV 에인트호번 등이 영입전에 적극적이라는 보도가 잇따랐다. 스페인 엘데스마르케는 “이강인은 이미 그 연령대 선수 중 세계 최고”라고 평가했고 마르카는 “한 달 휴식 뒤 팀에 돌아올 이강인을 1군에 뛰게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팀들의 영입 제안을 검토할 것인지 발렌시아는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강인은 “형들이 정말 열심히 뛰어줬기 때문에 좋은 상을 받았다. 팀원들 모두에게 주는 상 같다”며 “첫 경기부터 마지막까지 간절하게 최선을 다해 뛰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형들이랑 마지막이어서 아쉬운 것은 있다”고 했다. 다음 시즌 거취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나면 미래는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대표팀은 전반 34분과 후반 8분 블라디슬라프 수프리아하에게 연속골을 내줘 역전당했고 헤오르히 치타이시빌리에게 후반 44분 쐐기골을 내줬다. 최근 경기들과 달리 공격적인 미드필드 조합으로 나서 빠른 득점에 성공했지만 이후 선수들이 뒤로 물러서면서 주도권을 내줬고 수비진은 상대 개인기량과 스피드를 이겨내지 못했다. 경기 이후 이강인은 허탈해하는 동료들을 일일이 안아주고 얼굴을 매만지며 위로하고 격려했다. 정정용 감독은 “우리 실수로 안타깝게 실점하다 보니 (이런) 결과로 나타난 것 같다. 선수들이 소속팀으로 돌아가면 단언컨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17일 귀국해 이날 오전11시30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릴 환영식에 참가한다. 대한축구협회는 대표팀에 포상금을 준비 중이며 이강인에게는 1,000만원 이상이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