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건설적인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면서 ‘하노이 노딜’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비핵화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관영 중국중앙방송(CCTV)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북한 및 관련국들과 협력을 강화해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지역의 장기 안정에서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남북미 구도로 진행되고 있는 비핵화 협상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높이겠다는 시 주석의 강력한 의지로 풀이된다. 외교가에서는 비핵화 해법과 관련해 북미 간 입장 차가 여전히 큰 상황에서 중국까지 끼어들 경우 북핵 협상은 더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이 북중정상회담 띄우기에 총력전을 펴는 것은 중국 최고지도자의 방북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과 북러정상회담의 ‘노딜’로 위상이 흔들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김 위원장은 시 주석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 내 권위를 다시 확고히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실제 시 주석은 김 위원장에게 “중국은 계속해서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지지한다”며 “중국은 북한이 자신의 합리적 안보 및 발전에 관한 관심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이 닿는 한 도움을 주겠다”고 김 위원장이 가는 길에 대한 분명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이에 김 위원장은 “북한은 인내심을 유지하겠다”면서 “북한은 중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을 높게 평가한다”면서 “계속 중국과 소통하고 협력해서 한반도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새 진전을 거두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도록 하겠다”고 화답했다.
또 하노이 노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로 고립무원 상태에 빠진 북한의 외교 상황을 볼 때 시 주석의 방북은 가뭄의 단비 같은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시 주석은 방북길에 딩쉐샹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허리펑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주임 등 당 조직과 외교뿐 아니라 경제 분야의 사령탑을 총출동시켰다. 김 위원장도 시 주석에게 민생 개선에 중점을 둔 새로운 전략 노선을 관철 중이라며 중국의 경제 발전과 민생 개선의 경험을 더욱 배우고 싶다는 뜻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 주석 역시 이례적으로 관영방송을 통해 이례적으로 북중정상회담 내용을 빠르게 전하며 대북 영향력을 과시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시 주석의 이 같은 행보가 미중 패권 전쟁의 분수령이 될 오사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담판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미중 무역전쟁과 범죄인 인도 법안 추진에 따른 홍콩 시위로 수세에 몰린 시 주석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북한 카드를 활용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김 위원장은 “과거 1년간 북한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많은 적극적인 조치를 했지만 유관국의 적극적 반응을 얻지 못했다”며 “계속 중국과 소통하고 협력해 한반도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새 진전을 거두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도록 하겠다”며 비핵화 협상과 관련 시 주석의 지분을 인정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전날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관한 자신들의 새로운 안(案)을 시 주석에게 설명하고 이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해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한 바 있다.
다만 대다수 전문가는 북미 양자 대화에서 중국이 포함된 다자협상으로 양상이 변화할 경우 미중 무역전쟁과 남중국해 항행 문제 등 복잡한 변수가 추가돼 비핵화 협상이 더 꼬일 것으로 예측했다. 서울경제신문 펠로(자문단)인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시 주석은 김 위원장에게 대북 식량과 관광 등 규모가 있는 지원을 약속함으로써 북한의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보인다”며 “김 위원장은 미국과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되는 만큼 대미 강경노선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