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독자나 시청자에게 다른 매체에서는 만나 볼 수 없는 새로운 정보 즉 특종을 위한 전쟁을 하지만 스타일리스트들은 자신이 스타일링 해주는 유명인이 의상이나 신발, 가방 등으로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스타일 워(war)’를 치릅니다. 대중은 유명인의 완성된 스타일링에만 관심이 있지만 ‘백스테이지’에서는 “그의 스타일리스트가 누구, 유명인이 입은 옷의 브랜드가 무엇, 저 새로운 것은 어디 브랜드”라는 웅성임이 있는 거죠. “스타일리스트의 역량은 남들이 다 아는 흔한 브랜드의 옷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모르는 멋진 옷을 공수해 와 스타일링 하는 데서 판별이 납니다. 따라서 스타일리스트 사이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눈에 띄는 옷을 발견하면 어떻게든 수소문해 미국이건 제주도건 공수해 손에 넣는 것이죠. 요즘에는 여배우들은 적극적으로 ‘이 옷이 입고 싶다’고 제안을 하기도 하고요.(박명선 스타일리스트)”
따라서 스타일리스트들은 보다 독특하고 프레시하고 감각적인 브랜드를 찾느라 밤잠을 설칩니다. 요즘에는 인스타그램(instagram)이라는 것이 있어 휴대폰 하나로 전세계 모든 신생 브랜드를 손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네요. 커머셜 광고를 담당하는 이아람 스타일리스트는 “광고 예산이 한정돼 있는 가운데 하이엔드 감성을 원하지만 고가의 명품이 부담스러울 때 명품을 충분히 대체하고 남는 K 브랜드가 많다”고 귀뜀합니다.
그렇다면 스타일리스트들이 추천하는 백스테이지의 ‘히든 보석’을 한번 만나볼까요. 하이엔드 감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가격대는 상대적으로 착한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 말이지요. 해외에서 론칭해 실력을 인정 받은 ‘프로들 사이의 프로들(professionals of professionals’을 비롯해 이제 갓 세상에 태어난 ‘라이징 스타(rising star)’가 주인공입니다.
지난해 말 청와대 공식 SNS에 올라 온 김정숙 영부인의 사진 한 장이 패션계를 술렁이게 했는데요. 김 여사가 들고 있던 가방은 올해로 론칭 3년 차의 신진 디자이너의 제품 ‘구드(Gu_de)’ 엣지백이었죠. 지난해 글로벌 하이엔드 쇼핑몰 ‘네타포르테’ 입점 이후 해외 바이어 뿐 아니라 유명 패션 인플루언서에게서도 구드 백을 든 모습이 자주 포착됩니다. 스코틀랜드로 ‘좋다(good)’는 뜻의 구드는 1970년대 무드에서 영감 받아 빈티지한 느낌을 베이스로 미니멀하고 유니크한 쉐입(shape)을 통해 젊은 감각을 뿜어 냅니다. 악어 가죽 스타일의 이태리 가죽을 많이 사용하는데 악어 느낌 클래식하고 고급스러움은 잘 살려냈지만 역시나 싶을 정도로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 것이 장점이네요. 이아람 스타일리스트는 “명품백을 능가하는 디자인과 감성을 주지만 가격대는 훨씬 합리적”이라고 설명합니다. 구드의 스테디셀러는 우유갑 모양에서 따온 ‘밀키’와 반달 모티브에서 이름을 따온 ‘데미룬’ 백입니다.
얼마 전 도산공원에 플래그십스토어를 오픈한 컴템포러리 여성 의류 브랜드 ‘르비에르(Lvir)’는 미니멀하고 모던함이 특징입니다. 깔끔하면서도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룩을 연출하고 싶은 여성들에게 스타일스트들이 강추하는 루키네요. 내추럴한 수트, 레이어링이 특징인 원피스, 고급스럽고 자연스러운 컬러감과 몸에 착착 감겨 떨어지는 소재, 무난한 듯 하지만 디테일이 살아있는 섬세한 감각의 소재 등이 사무실 내 패피(fashion people)로 만들어 줄 것 같네요. 분명 화려하게 멋을 낸 것은 아니지만 계속 뒤돌아 보게 하는 룩이 바로 이런 것이죠.
발렌시아가 수석 디자이너였던 니콜라 게스키에르 밑에서 경험을 쌓은 후 2014년 파리에서 첫번째 쿠튀르 콜렉션을 선보이며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난 ‘KIMHEKIM(김해김)’. 사실 저는 해외 쇼핑몰을 뒤지다 발견해 이런 ‘아름다운’ 한국 브랜드가 있었나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요. KIMHEKIM의 김인태 디자이너는 꽃이 가진 실루엣과 향기를 의상에 고스란히 표현하기를 원해 대부분의 창작물을 꽃에서 시작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의 콜렉션은 몽환적이면서 꽃이 피어오르는 듯한데요. 시그니처인 오간자 느낌의 원단과 여성성이 강한 화이트 진주, 리본 디테일을 많이 사용해 여성스럽습니다.
지난해 6월 한국인 최초로 LVMH 프라이즈의 파이널 리스트에 선정되고 2등 격의 특별상을 수상한 1984년생 황경록 디자이너. 셀린느, 끌로에, 루이비통을 거친 그가 만든 여성복 브랜드 ‘ROKH’은 영국에서 론칭하자 마자 패션계의 시선을 사로 잡았죠. 10대 때 미국에 이민을 갔고 영국 명문 패션 스쿨 생 마틴에서 학사는 남성복, 석사는 여성복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전시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로레알 상을 수여 받고 한국인 최초로 피날레를 장식했는데요, 그의 능력을 알아본 셀린느는 황 디자이너를 바로 스카우트 했고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비 파일로와 함께 디자인팀에서 3년간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래서인지 2019 봄·여름콜렉션에서는 살짝 셀린느의 향기가 납니다. ROKH이 그려내는 실루엣이란 내면에 자리 잡힌 불확실성, 불완전함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역설적이게도 ‘위태로운 아름다움’을 보이는 여성입니다. 남성복, 여성복 모두 전공한 덕분인지 록은 여성적이면서도 남성적이고 우아하고 유동성 있는 디자인을 주류로, 위트 있는 디테일, 젊은 감각, 실루엣 트위스트가 특징이네요. 박명선 스타일리스트는 “절개, 재단 하나하나가 개성이 있으며 평범하지만 황 디자이너만의 변주와 트위스트가 있는 옷으로 파격이 매력”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미 많은 셀렙들이 선택한 ‘레지나 표(표지영)’를 ‘히든 브랜드’로 꼽기는 살짝 때 지난 듯도 하지만 레지나 표 역시 해외에서 더 유명합니다. 간호섭 홍익대 미대교수에게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잘 나가는 K 패션 브랜드 하나를 꼽아 달라고 하니 바로 표 디자이너를 지명했습니다. 셀린느, 록산다 등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2013년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의 옷은 오트 쿠튀르처럼 범접하기 어렵지 않으면서도 너무 여성 여성하거나 스트리트 성향에 치우치지도 않고 여성들의 모든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는 그야말로 이 분야 언어로 ‘웨어러블(wearable)’하다는 것이 포인트죠. 미니멀하면서 구조적인 라인과 과감한 컬러와 소재의 배합, 우아한 실루엣과 이색적인 밸런스가 흥미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여성만이 입을 수 있는 옷, 여성만이 누릴 수 있는 재미와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얼마 전에는 국내 슈즈 브랜드 ‘율이에’와 아이웨어 브랜드 ‘프로젝트프로덕트’와의 협업을 통해 선보인 액세서리 라인이 자주 포착되더라고요. 특히 낯선 요소들이 조화롭게 구현되는 레지나표의 디자인은 건축이나 회화, 조각 같은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얻는 영감이라고 합니다. 그는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와 콘스탄틴 브란쿠시, 표현주의 작가 밀턴 에이버리, 앙겔라 데라크루스의 작품을 평소 좋아한다는군요.
배우 신민아씨가 착장해 눈길을 모았던 까이에의 ‘버터플라이 랩 드레스’는 밋밋한 원피스를 귀여운 러플로 변주를 주면서 페미닌한 느낌으로 지름신을 내리게 합니다. 고급 패턴과 원자재를 사용해 착용감이 참 좋습니다. 세컨 피부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감기면서 여성의 내재된 우아함을 이끌어 내는 것 같아요.
‘너무 사랑스러워서 미안해’. 김은주 디자이너의 ‘쏘리투머치러브(Sorry Too Much Love)’는 브랜드명만 들어도 사랑스러워집니다. 달콤, 펑키, 러블리, 우아를 콘셉트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옷으로 표현하며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하는 여성들에게 어필할 것 같습니다. 이미 수 많은 패피와 셀렙에게 사랑 받고 있군요. 하늘하늘한 시스루 소재와 레이스, 프릴 디테일이 어우러진 러블리한 느낌이 사랑스럽고 당차기까지 합니다. 자신이 사랑스러워 미안하다고 할 만큼 나를 사랑하는 여성에게 어울리는 옷이겠죠. 경리단길에 숍을 오픈한 ‘pretone’의 양수미 대표는 셔츠와 원피스를 매니시하게 잘 만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일하는 여성들이 일터에서 멋스럽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죠. 평소 아트에 관심이 많아 항상 그의 옷 옆에는 그림이 함께 합니다.
디자이너 슈즈인 ‘왓아이원트’는 기존 봐오던 디자이너 슈즈 브랜드의 너무 하이엔드의 구조적인, 또한 너무 예술작품적인 아방가르드한 감성이 아닌 미켈레의 구찌 같은 하이엔드지만 트렌디한 브랜드에서 느껴지는 대중성을 띤 슈즈입니다. 2년 전 득템해 스타일리시하면서 편하게 신었던 블링블링 슬립온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왓아이원트였더군요. 스커트나 팬츠 모두 패션을 완성시키는 잇템으로 신을 때마다 주변의 관심을 모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생활산업부장 yvett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