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소비재 시장에서 가장 활발한 인수합병(M&A)이 이뤄진 업종은 어디일까.
일단 눈에 띄는 것은 화장품 분야다. 유니레버의 카버코리아 인수, 로레알의 스타일난다 인수와 같은 해외 전략투자자(SI)의 굵직한 투자 건이 있다. 국내 재무투자자(FI)들은 화장품 브랜드 외에도 화장품 OEM·ODM, 화장품 용기, 마스크팩 등과 같은 화장품 산업 전반에 걸친 투자를 진행해왔다. 2018년 한 해에만 약 30여건 이상의 국내 화장품 및 생활용품 산업 대상 인수 및 투자가 이뤄졌다. 세계인이 주목하는 K뷰티, 중국을 필두로 한 아시아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뒷받침되는 한 한국 화장품 산업의 황금기가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K뷰티 성장 전선에 적신호가 켜졌다. 2018년 전년 대비 26.5% 성장을 기록한 국내 화장품 수출액이 올해 3월부터 지속적으로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고 있다. 중국·홍콩·대만향 수출액이 현저하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분쟁, 글로벌 경기 둔화 등의 거시 경제 변화와 중국의 전자상거래법 등의 규제 변화가 불확실한 시장 환경을 조성한 가운데 중국 시장 내 한국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 감소, 그리고 중국 로컬 브랜드들의 약진 등이 주요 이유로 거론된다. 국내 화장품 시장의 성장이 ‘중국’이라는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산업 배경상 이러한 변화의 물결은 더 이상 잔잔한 파도라 치부할 만한 일이 아니다. 이 물결 너머에 더 큰 태풍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국내 화장품 산업이 헤쳐 나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국내 화장품 산업의 미래에 대한 실마리는 글로벌 화장품 시장 트렌드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융합상품(Converged Product)’, 그리고 ‘뷰티 테크놀로지’다. 이들 제품군은 국내에서는 시작 단계이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다. 융합상품은 화장품 외 제약·바이오·전자기기 등 이종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기존 제품의 혁신, 그리고 기존 제품과의 시너지를 창출하는 트렌드를 의미한다. 국내 코스메슈티컬(화장품+제약) 및 홈뷰티 디바이스(화장품+전자기기) 시장은 2024년까지 매년 15% 이상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선진국에서는 오랜 업력을 지닌 약국형 브랜드를 기반으로 코스메슈티컬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중소형 브랜드를 위주로 ‘더마’ ‘시카’ 등의 성분을 앞세운 화장품들이 인기를 끌었다. 국내 화장품 대기업은 모 제약회사 인수를 통해 이러한 코스메슈티컬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또 다른 트렌드인 뷰티테크놀로지는 뷰티 영역에 디지털을 도입, 사용자 경험(UX) 고도화 및 더욱 세분화된 맞춤형 제품 제공을 가능하게 한다. 글로벌 선도기업인 로레알·시세이도 등은 이미 증강현실(AR), 인공지능(AI) 기반 기술회사와의 제휴 및 인수를 통해 이러한 변화에 앞장서고 있다.
국내 대기업도 이 흐름에 발맞추고 있다. 국내 화장품 대기업 중 한 곳의 경우 ‘디지털 이노베이션 랩’을 만들고 글로벌 변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서울 명동의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5,000명 이상의 피부 측정 데이터와 1,000명 이상의 유전자 진단 데이터를 수집해 맞춤형 화장품의 기틀을 마련 중이다. 또 3D 프린터 기술을 활용한 개인 맞춤형 입체 마스크, 맞춤형 세럼 서비스 등도 선보이고 있다.
국내 화장품 산업은 이미 다양한 제품을 기반으로 폭넓은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고 있다. 한국의 또 다른 힘인 디지털 기술을 접목할 경우 이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