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이맘때와 비교하면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2,444가구)에서 30개 이상 매물이 올라와 있어야 하는데 현재 물량이 10건 안팎입니다. 특히 로얄층 매물은 집주인이 쟁여놓으니 이보다 질이 낮은 매물이 최고가로 거래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김시연 서초구 래미안114공인 대표)
세금을 피해 주택 법인화가 증가하면서 시장에선 매물 잠김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택 법인화를 통해 세제 혜택을 최대화하려면 보유 기간이 길수록 좋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 등 자산가들 사이에서 주택 법인화가 절세 전략으로 확산되는 만큼 시장에서는 매물 가뭄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세금 폭탄 피해 주택 법인화 급증= 주택 법인화가 늘어난 이유는 정부의 부동산 보유세 강화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9·13부동산 대책을 통해 종합부동산세율을 높이고 다주택자 양도세를 강화했다. 세 부담이 늘자 주택 증여와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이 대폭 증가했다. 올 들어 서울 주택증여건수는 1월(2,457건), 2월(1,132건), 3월(1,813건), 4월(2,020건) 등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전국 신규 임대주택수 역시 올 들어 매월 평균 1만 가구 가량 늘고 있다.
최근에는 자산가의 절세 흐름이 주택 법인화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한국감정원의 지난달 거래주체별 부동산 거래 현황에 따르면 법인이 개인에게 매입한 아파트 수는 역대 최고치다. 전국 기준으로 전체 3만5,221건의 매매 중 1,186건이 개인이 법인에 판 경우였다. 지난 1월 561건에서 두 배가 껑충 뛰었다. 지역별로는 서울 강남 4구를 중심으로 꾸준한 증가세다. 올 1월 4건을 시작으로 4월 21건, 5월 24건을 넘어 6월에는 25건을 기록했다.
주택 법인화는 주택임대사업을 법인화하거나 기존 법인 자산에 개인 주택을 편입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법인 소유가 된 만큼 나중에 팔 때 양도세를 최대 32%만 내면 된다. 또 자산가 입장에선 보유 주택 수를 줄여 보유세 부담을 줄이는 효과도 볼 수 있다. 원종훈 KB국민은행 부동산세무팀장은 “보유세 부담이 줄기 때문에 최근 상담이 꽤 늘었다”며 “다만 주택 법인화를 하더라도 법인으로부터 배당을 받으면 배당세를 내야 하는 만큼 주택 법인화로 얼마나 절세가 될지는 확정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시장 매물잠김 우려 확산= 시장에서 주택 법인화와 관련 우려하는 점은 매물 잠김 현상이다. 법인으로 넘어간 주택은 절세를 위해 장기간 묶이는 경우가 많다. 법인으로 매입한 뒤 배당받거나 처분할 경우 소득세가 부과되는 데 보유한 기간이 짧으면 일반 주택의 양도소득세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자문센터 세무팀장은 “자체적으로 계산해보니 5년 정도까지는 주택 법인화를 통한 세제 혜택이 크지 않는 걸로 나왔다”며 “주택 법인화로 세제혜택을 보려면 최대한 장기간 보유하면서 과세를 이연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주택 법인화로 인해 서울 주택시장의 유동 물량 감소 우려는 확산되고 있다. 정부의 보유세 강화 정책 여파로 유동 물량이 줄었는데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서울 주택시장에서 4만216건이 매매되는 동안 주택임대사업(2만3,587호), 증여(9,772호), 법인(3,196호) 등 3만6,555가구가 묶인 바 있다. 서울 강남구는 이 기간 1,456건이 거래된 반면 주택임대사업(3,202호), 증여(888호), 법인(174호) 등 무려 3,202호가 유동성을 잃었다. 송파구도 2,107건 매매될 때 2,859호가 매매시장에서 수년 간 제외됐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분양가상한제 등 추가 규제로 인해 좋은 아파트를 보유한 사람들은 더욱 장기간 보유하려 할 것”이라며 “매물 잠김 현상이 지속되면 시장에선 수급 우려가 생길 수 있다”고 평가했다.